시집에서 읽은 시

잠 속의 잠/ 정선

검지 정숙자 2010. 11. 28. 02:48

 

   잠 속의 잠


     정선



  한밤중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몸의 깊숙한 곳이 패였다

  내 잠도 한 방울씩 샜다


  티브이는 행복한 오후를 저 혼자 노래하고

  나는 죄수처럼 질질 끌고 다니던 잠을 게워낸다

  게으른 하품 속으로 햇살들이 시옷자로 부서진다

  어제 중요했던 일이 오늘은 시시해져

  길가 은행나무들의 대화가 궁금해진다

  고개를 내밀고 대화를 엿듣는 하오 네 시

  모두 막혔어

  그늘은 비상구야

  나무의 목소리는 투명하고

  그늘은 기다랗게 또 다른 수로를 내고 있다

  갈라진 수로바닥의 잠 한 마리

  그늘 속에 둥지를 틀고 뒤척인다

  내 몸을 파먹고

  텅 빈 몸 어느 돌 틈에 알을 낳은 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강을 거슬러오른다



  *시집『랭보는 오줌발이 짧았다』에서/ 2010.10.30 (주)천년의시작 펴냄

  *정선/ 전남 함평 출생, 2006년『작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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