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아래 머물다 잠이 든 오후
구봉완
하루가 둘로 나뉘는 오후는 꿈이다
신문을 덮고 잠이 든
한번은 아버지였고 이제는 동생쯤 되는
세월이 버려져 있다
신발을 벗고 누운
숲 속의 낡은 시간만큼 걸어가
헐렁한 옷을 들추다 햇살이 머물고
누워 있는 그늘을 타고 출렁이는
벤치의 가벼움
한 번도 고개를 숙여 들여다본 적 없는
숙연함으로
나무는
하늘을 향해 머리를 밀어 넣고 흔든다
붉게 물든 낙엽처럼
신문에 싸여 구르는
벤치의 그늘은 쥐가 갉아먹고 있다
이름 없이 앉아서 쉬다 가는 시간이
누군가를 묻지 않고
여울지는 물을 따라 사라지듯
얇은 한 생의 순간을 덮고 흐르는 곳
단절된 휴식의 공간에서
펄럭이는 그늘의 사색도
부패한 주검 위에 이제는
낙엽이 내려 쌓이는.
* 시집 『솥』에서/ 2014.5.14 <시산맥사> 발행
* 구봉완/ 충남 서천 출생, 2000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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