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황홀한 저녁/ 박완호

검지 정숙자 2014. 6. 9. 02:14

 

 

     황홀한 저녁

 

      박완호

 

 

  네가 되게 그리워지는 저녁이다

  어둠이 밀려오는 속도를 따라

  너의 자리가 조금씩 흐릿해진다

  잔고를 다 털어낸 은행 너머

  두 줄기 연기가 꽈배기를 틀고 있다

  서녘을 물들이는 건 노을만은 아니었음을,

  12월 저녁을 지나는 새들은

  제 이름을 모르는 이에게도

  쓸쓸하게 빛나는 음악을 남긴다

  저들이 가는 쪽이 네가 있는 곳이다

  가으내 번민하던 나뭇가지가 가리키는 곳,

  갑자기 바람이 세어지고

  나무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그쪽 어디엔가 네가 서 있는 까닭이리라

  무슨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젖혀진다

  곧 세상이 다 어두워지고

  서로의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게 되면

  형형색색의 눈을 치켜뜨고

  네가 사방에서 다가올 것이다

 

  * 시집『너무 많은 당신』에서/ 2014.5.23 <문학의전당> 펴냄

  * 박완호/ 충북 진천 출생, 1991년『동서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