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
황학주
종점에 차가 와 있고
차가운 화술처럼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둥근 모래사장에 앉을 때
마음은 누군가의 없는 손을 못질해 박으려는 손짓으로
허우적이다 씻기었다, 누구일까
빈 꽃대에 꽃 하나가 돌아누웠다 나간 밤
마음은 혼자 쓰는 침대를 지켜보는 부엉이 눈 속으로 잠
기고, 국경검문소
다리는 통과하는 듯한 일요일이 다시 온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기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진학(眞鶴)*이라는 마을로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길이 있
어야 한다
어떤 슬픔은 이미 기억으로만 갈 수 있다
날이 새면 막차가 끊기고
바다에서 이불 터는 소리가 난다
고양이 등처럼 말리는 해안선 난간으로 날아가는 눈송
이들
이맘때쯤이면 내 몸을 지나는
당신의 느린 길이 굽어지고 있었다
온몸으로 서로에게 저물어가야 행복이지만
자신의 이방(異邦)이라고 해야 할
죽음에게마저 잊힌 채 누워
빈 꽃대에 눈꽃 송이 하나로 올라보는
야윈 다리의 흰 그림자
아직은 당신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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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학(眞鶴) : 보통열차가 서는 일본의 시골 역.
*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2014.3.20 <(주)창비 펴냄>
* 황학주/ 1954년 광주 출생, 1987년 시집『사람』으로 작품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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