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일직(一直)의 검은 향/ 박정남

검지 정숙자 2014. 4. 17. 23:30

 

 

     일직(一直)의 검은 향

 

      박정남

 

 

  불이 다 탈 때까지 인생은 길어지는 것 같았다

  불이 다 타고

  꺼져가는 성냥개비가

  새우처럼 꼬부랑 할머니처럼

  갑자기 구부러지며 내 손가락 끝을 떠나가서

  재떨이 위에 떨어졌다

 

  벌써 세 개의 성냥개비를 다 태우고 남은

  검은 실낱같은 재를 들여다보며

  거기 보이는 재의 길이와 굽은 각도만큼

  인생은 길어 보이거나 힘들어 보이고

  검은 색만큼 뚜렷해서

  외로워 보이고

 

  어떤 불도 들여다보면

  천천히 타며 깊은 숨쉬기를 해서

  생이 오래 인내하며 깊어가는 것 같았다

  내 가슴을 향꽂이로 삼아 연기를 내며

  보일 듯 말 듯 깜박이는 불을 달고

  아주 서서히 타 내려가는

  일직(一直)의 검은 향

 

  그 어떤 불도

  서둘러 소란하게 지나가지 않았다

  타는 불 속에서 심지를 내리고  있었다

  마음의 심지를 점점 더 굳세게

  뿌리박아 내려갔다

 

 

   * 시집『꽃을 물었다』에서/  2014.3.26 <문학의전당> 펴냄

   * 박정남/ 경북 구미 출생, 1975년『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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