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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라는 광원』김백겸/ 발췌

검지 정숙자 2013. 10. 9. 16:36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라는 광원』/ 발췌

        

         김백겸(시인)   

 

 

  * 뉴턴역학이 무너지면서 이 세계란 다시 이상한 신화의 세계처럼 기존의 합리적 인과와 운동이 지배하지 않는 세계라는 것이 드러난다. 양자역학의 '초끈(super-string)'이론이나 '초대칭(super symmetry)'이론 그리고 '평행우주'의 개념들은 기존의 과학세계와 대응하지 않는 이상한 마법의 세계를 보여준다. 양자역학은 4차원 세계의 현실공간을 넘어선 11차원의 세계를 가정하고 입자와 반입자의 무한거리를 뛰어넘는 정보공유나 심지어 미래의 입자운동이 과거의 입자운동에 영향을 주는 시간의 초월을 말한다.

  요사이는 '양자의식'이라는 연구분야도 등장해서 인간의 의식이 분자생물의 화학적 사건이 아닌 원자단위의 전자운동이 관여하는 양자도약이라는 이론까지 등장한다. 이 이론은 인간의 의식이란 양자파동이 깜박거리는 매순간 우주 끝까지 섭동하고 간섭했다가 다시 입자로 구성된 현실세계까지 돌아온다고 하니 신화적 마법으로는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림의 역사는 대충 신화-종교-과학의 그림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문화 환경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인간의 감정과 환상에 기초하는 가상세계는 주객의 위치변환이나 세계를 부분과 전체의 통일로 바라보는 무의식의 욕동이 지배한다. 마음과 정신의 병은 이런 내부정신과 사회적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발생하고 이 균열을 종교와 예술과 신화가 치유해온 역사가 인간마음의 역사다. ( p_34) 

 

  * 천재는 젊은 시간이 만들고 대가는 나이든 시간의 숙성에 의해 발효된다는 말이 있다. (p_149)

 

  * 인생이라는 도박장에 참여한 게이머들이 모두 죽은 뒤에도 시비(詩碑)는 남아 있겠지만 시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새겨져야만 진정한 시비가 된다. ( p-184)

 

  * 현대는 금욕에 의한 승화의 기쁨을 얻는 대신 감각의 직접 향유로 욕망을 누리고자 하는 시대이다. 예술도 이런 사조에 흘러가고 있고 감각의 기쁨은 있으나 내면의 목소리는 가려지고 희미해져가고 있다. 과거의 천재 시인들은 자신의 심혼에 거주하는 '데몬(Demon)'의 목소리를 듣는 자였다.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들이 점점 없어져 간다.

   시와 음악의 신이었던 아폴로는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리스 시대에는 예술이란 기술(Techne)이었다. 예술이란 모방에 의해 쾌락을 얻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심혼을 치료한다는 암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특수와 보편의 매개역할을 하면서 진리를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진리'라는 원본이 없다고 생각하는 포스트모던 예술은 형식의 쾌락은 있으나 인간의 심혼을 치료하는 기능은 없는 것 같다. ( p_239/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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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집『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라는 광원』/ 2012.11.30 <도서출판 지혜> 펴냄

  * 김백겸/ 대전 출생, 1983년《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