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시인 선서/ 김종해

검지 정숙자 2014. 2. 17. 01:34

 

 

     시인 선서

 

      김종해

 

 

  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면 구하지 말라.

  스스로 안에서 차오르지 않고 넘치지 않으면 쓰지 말라.

  물 흐르듯 바람 불듯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좇아가라.

  가지지 않고 있지도 않은 것을 다듬지 말라.

  세상의 어느 곳에서 그대 시를 주문하더라도

  그대의 절실함과 내통하지 않으면 응하지 말라.

  그 주문에 의하여 시인이 시를 쓰고 시 배달을 한들

  그것은 이미 곧 썩을 지푸라기 시(詩)이며, 거짓말 시(詩)가 아니냐.

  시인이여, 시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대의 심연을 거치고

  그대의 혼에 인각된 말씀이거늘, 치열한 장인의식 없이는 쓰지 말라.

  시인이여, 시여, 그대는 이 지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위안하고

  보다 높은 쪽으로 솟구치게 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여야 한다.

  온 세상의 권력의 전횡(專橫)에 눌려 핍박받을지라도

  그대의 칼날 같은 저항과 충언을 숨기지 말라.

  민주와 자유가 유린당하고, 한 시대와 사회가 말문을 잃어버릴지라도

  시인이여, 그대는 어둠을 거쳐서 한 시대의 새벽이 다시 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하라.

  그대는 외로운 이, 가난한 이, 그늘진 이, 핍박받는 이,

  영원 쪽에 서서 일하는 이의 맹우(盟友)여야 한다.

 

  -『시와 세계』, 2013년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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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지』2014-봄호/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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