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별리(別離)의 평행이론/ 박수중

검지 정숙자 2014. 2. 9. 00:35

 

 

        별리(別離)의 평행이론

 

         박수중

 

 

   갑자기 노모(老母)의 말문이 막혀요

   안타까워 호소하는 듯 목이 메었어요

   목구멍 깊숙이서 배어나오는

   단모음(單母音) '아'만 탁하게 새어 나왔어요

 

   그녀는 대신 노트에 글을 썼지요

   세상의 마지막 끈들 이름을

   몸에 밴 서예의 솜씨로 단정히 쓰다가

   힘이 부치자 흘려쓰기 시작했어요

   한번 막내 이름을 쓰면

   그날은 수십 번 그것만 썼어요

   어느날은 매일 보는 늙은 아들에게

  ' 직장'이라고 써 그의 백수를 걱정했어요

   밥을 넘기지 못하더니 머지않아 죽도 갈아서

   미음으로 겨우 넘겼어요

  그런데도 눈빛만은 초롱초롱했어요

  인내로 미수상(米壽床)을 받았지요

  거실 천정에 떠 있는 풍선들이 쓸쓸했어요

 

  미음조차  기도(氣道)로 잘못 들어가

  한 시간씩 재채기하더니

  얼굴도 깨끗하게

 사십 년 전 남편이 간 그날을 골라

 장마가 끝나고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한줄기 바람처럼 가 버렸어요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지나고 나자

  다시 백사 년만의 폭우가 퍼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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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볼레로』에서/ 2014.1.5 <미네르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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