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리(別離)의 평행이론
박수중
갑자기 노모(老母)의 말문이 막혀요
안타까워 호소하는 듯 목이 메었어요
목구멍 깊숙이서 배어나오는
단모음(單母音) '아'만 탁하게 새어 나왔어요
그녀는 대신 노트에 글을 썼지요
세상의 마지막 끈들 이름을
몸에 밴 서예의 솜씨로 단정히 쓰다가
힘이 부치자 흘려쓰기 시작했어요
한번 막내 이름을 쓰면
그날은 수십 번 그것만 썼어요
어느날은 매일 보는 늙은 아들에게
' 직장'이라고 써 그의 백수를 걱정했어요
밥을 넘기지 못하더니 머지않아 죽도 갈아서
미음으로 겨우 넘겼어요
그런데도 눈빛만은 초롱초롱했어요
인내로 미수상(米壽床)을 받았지요
거실 천정에 떠 있는 풍선들이 쓸쓸했어요
미음조차 기도(氣道)로 잘못 들어가
한 시간씩 재채기하더니
얼굴도 깨끗하게
사십 년 전 남편이 간 그날을 골라
장마가 끝나고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한줄기 바람처럼 가 버렸어요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지나고 나자
다시 백사 년만의 폭우가 퍼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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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볼레로』에서/ 2014.1.5 <미네르바>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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