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헌화(獻花)/ 강해림

검지 정숙자 2014. 1. 21. 01:12

 

 

    헌화(獻花)

 

     강해림

 

 

  앞바퀴에 뭔가 걸린 듯

  물컹한

  순간, 만개(滿開)의

  붉은 액체의 비명이 허공에 뿌려졌다

 

  어둠과 정적만이 활개치는 아스팔트 위에 홀로 남아 멀어져

간 저 검은 물체는

 

  유언도 작별인사도 없이 바로 즉사했다는 마지막 진술서 같

은 밤은 목격자도 없고

 

  개죽음이야

 

  바로 나야

  수백 번 수천 번 넘게 건넜던 길을 횡단했을 뿐인데, 쏟아지

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먼 순간의 환한

 

  비명횡사의 피로 물든, 장엄한 헌화를 감히 생각했을까마는

 

  형체도 없이 납작

  말라 붙은 혈흔의 꽃잎이 아라베스크 무늬로 새겨진 신전의

  번제(燔祭)로 바쳐지길 원했던 건 아닌데, 내 야생은

 

  누군가에 의해

  쓰레기봉투에 넣어져 깨끗하게 처리될, 최후의 방식을 택했던

건 더더욱 아니고

 

  다만 오랫동안 걸었던 길을, 그 길을

 

 

   * 시집 『그냥 한번 불러보는』/ 2014.1.9 <문학의전당> 펴냄

   * 강해림/ 대구 출생, 1997년 월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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