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獻花)
강해림
앞바퀴에 뭔가 걸린 듯
물컹한
순간, 만개(滿開)의
붉은 액체의 비명이 허공에 뿌려졌다
어둠과 정적만이 활개치는 아스팔트 위에 홀로 남아 멀어져
간 저 검은 물체는
유언도 작별인사도 없이 바로 즉사했다는 마지막 진술서 같
은 밤은 목격자도 없고
개죽음이야
바로 나야
수백 번 수천 번 넘게 건넜던 길을 횡단했을 뿐인데, 쏟아지
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먼 순간의 환한
비명횡사의 피로 물든, 장엄한 헌화를 감히 생각했을까마는
형체도 없이 납작
말라 붙은 혈흔의 꽃잎이 아라베스크 무늬로 새겨진 신전의
번제(燔祭)로 바쳐지길 원했던 건 아닌데, 내 야생은
누군가에 의해
쓰레기봉투에 넣어져 깨끗하게 처리될, 최후의 방식을 택했던
건 더더욱 아니고
다만 오랫동안 걸었던 길을, 그 길을
* 시집 『그냥 한번 불러보는』/ 2014.1.9 <문학의전당> 펴냄
* 강해림/ 대구 출생, 1997년 월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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