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승리
김점미
젖은 땅을 헤집고 아스팔트 가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
한 마리의 생각.
이게 생존이 아니라 과욕이라면 3분 후 어떤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밟혀야 할까요, 발버둥이라도 쳐
야 할까요?
난세에는 쉬운 질문도 어렵게 대답해야 하므로 나는
길바닥에 길게 몸을 깔고 드러누워,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나와 내 가족과 내 연인과 내 친구, 친지와 동
료들입니다.
- 아낌없이 주는 흉기라는 가족은 나를 비껴갑니다.
- 천국과 지옥을 선사하는 연인도 나를 비껴갑니다.
- 객관적 사랑을 실천하는 친구들도 나를 비껴갑니다.
- 환한 웃음으로 속을 감춘 동료들도 나를 비껴갑니다.
그럼, 땅바닥에 누운 나의 위기는 모두 사라졌나요?
누운 채 낮게 낮게 기기만 한 나는 생존에서 숭리했나
요? 축배를 들까요?
기뻐 날뛰는 나는 잠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
자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3분이 지나도 30분이 지나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느
껴졌습니다.춤을 추며 비좁은 것들 사이를 지나다녔습
니다.
친절하게도 그들이 내게 길을 터 주었습니다. 서서 보
는 세상은 누워서 기던 세상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형형의 풍선들이 내게 꿈이라는
것을 주었습니다. 아직도 살아남았다는.
* 시집 『한 시간 후, 세상은』에서/ 2013.12.31 <북인> 펴냄
* 김점미/ 부산 출생, 2002년『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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