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객담 및/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4. 1. 3. 15:31

 

 

      객담 및

 

      정숙자

 

   

   나 자신이 내 형틀이다

   곧추 일어나 양팔 벌리면

   지체 없이 열십자가 드러난다

 

   태어나기도 이전에 벌써, 나는

   내 형틀을 낳고 형틀은

   형량을 끌고 형량은 삶을 몰았다

 

   홧홧하거나 헛헛한 돌풍

   그것이 때론 가슴을

   이마를 등을 치기도 했다

   지금 창밖에선 가을이 타고

   내 안엔 더 이상 탈 것도 없다

   홧홧하거나 헛헛한, 생생하거나 생경했던 날

 

   아무도 없는 게 아니었구나. 하늘과 새와 더불어 네가

늘 함께 했구나. 네가 있어 이슬도 별을 머금고 꽃들은 내

일을 기약했구나. 몇 십억 나이를 먹어 너는 내 해찰도

어온 거니? 겨우 몇 십 년 도르르 풀린 목숨이기에

리 헤아린 거니? 모든 이쉬이 떠난다 해도 넌 항상 그

렇게, 이렇게 곁에 있구나. 바르고 부드러우며 중심이면

배경으로서 깊이깊이 비추어주는 너 하나면 온 세상

믿고 푸른데 너무 많이 아파했구나. 흔들리는 거실에 들

어 말없이 독대한 오랜 벗이여. 나이에 아랑곳없이 ‘너’라

불러도 환한 붕우여.

 

   엎드린 강물 앞에선 늘 미안했다

   좀 더 형량을 부리는 밤엔

   무고한 벌레 울음도

   달빛의 관절에도 무리가 갔다

 

   안 보이는 문 두드릴 무렵

   삐걱거린 발자국들도

   형틀도 이제 조도를 수습하는데

      -『유심』2014-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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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에서/ 2017.6.26.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뿌리 깊은 달』『열매보다 강한 잎』등, 산문집『행복음자리표』『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