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세계문학을 지향하며/ 신원철

검지 정숙자 2013. 8. 23. 01:54

 

     세계문학을 지향하며

 

       신원철

 

 

  1970, 80년대의 한국지성은 민족문학이라는 화두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외국문학에 대한 열등감과 편향을 지양하며 우리 나름의 문학세계를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또한 불문학에서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어느 교수는 보들레르의 상징시보다는 우리의 아름다운 판소리에서 참된 가치를 발견했다는 말로 많은 공감을 받았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우물 안 개구리식 자가당착이다. 우리문학만이 최고다. 외국문학을 숭배하는 것은 사대근성이다 라는 식의 생각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영역을 좁히는 결과를 부른다.

  나는 영문과를 다니던 대학시절부터 이 문제에 시달렸다. 대학원을 진학하려고 준비하는 나에게 많은 친구들이 툭툭 던지는 말은 한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해서 무슨 결과를 얻을 것이냐였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영문학의 자체 매력에 빠졌다기보다는 교수가 되고 싶었던 나는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바꾸어 국문과를 진학한 친구들은 더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가치 없는 공부를 한답시고 끙끙대는 나를 비웃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나는 그 쓸 데 없는 영문학을 가지고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마침내 박사학위 논문까지 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쓸모 없다던 노력이 슬슬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어렵기만 하던 영시가 참고 견디며 계속 읽고 논문을 쓰기 시작하자 엄청난 매력과 환희를 가져다주었다. 영시 특유의 소리의 조화, 선명한 이미지는 언어예술의 절정이라는 느낌마저 갖게 했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더 절감하게 된 것은 언어가 갖는 문화에서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 문화의 총체적 반영이다. 영어가 오늘의 영어로 성장한 데에는 셰익스피어, 밀턴, 테니슨 등 시인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시인들은 그 나라 언어의 미학을 상승시키는 최고의 문화 첨병인 것이다. 문학은 국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불란서, 독일, 러시아 등은 모두 자국의 문학에 만족하지 않고 타국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좋은 것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냈다. 

  돌이켜 보면 1920년에서 1940년까지의 20년은 우리 민족의 신문학이 움트던 귀중한 시기이면서, 너무나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던 때였다. 서구에서 수 백년을 두고 발전해 온 문예사조들이 20년 동안 한꺼번에 파도처럼 한반도로 밀려 들어왔던 것이다.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었다. 당시 우리 선대 문인들이 얼마나 당혹했을지 그리고 외국문학에 대한 선망과 열등감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국문학은 모두 일본어 번역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당시의 최고 첨단 학문은 단연 영문학이었고 이효석, 정지용, 김억 등은 모두 영어교사였다. 당시 한국 최초의 성악가 윤심덕의 애인 김우진도 다름 아닌 예이츠의 시극을 전공한 영문학도였다. 그렇게 우리의 근대문학은 시작되었다.  

  우리의 문학이 외국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성장하고 깨어났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성장하기 시작한 우리 문학이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은 대단하지만 우리의 것만 최고이고 이걸 공부해야 참가치가 있다는 애국적 발상은 대원군적 아이디어다. 오히려 외국문학에 대한 진정한 연구와 관심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외국문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더욱 활발해져서 최근의 외국문학들, 꼭 노벨상 수상작들 뿐 아니라 흥미로운 온갖 것들이 속속 소개되어야 그것이 우리나라의 문학을 살찌우는 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만의 문학이 아니라 세계 속의 한국문학이 되어야 한다.

  현재 내가 관여하는 <동서비교문학회>라는 단체에서는 "세계문학 콜로키움"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문학부터 시작해 아랍문학, 동구권문학, 중국, 스페인문학까지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려는 기획이다. 국문학, 영문학을 뛰어넘어 세계문학으로 관심을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흔히 러시아문학을 일컬어 깊이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문학작품에서 읽히는 깊은 슬픔과 고통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톨스토이의 단편 하나라도 잡아서 한 행 한 행 천착해서 읽어보라. 그들의 애환은 정말 절절하고 깊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현장을 가보면 그런 문학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기상조건과 여타의 상황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문학은 그런 가운데 오랜 시간을 두고 숙성되어 탄생하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나라 시인들의 시가 아주 뛰어난데 번역을 잘 못해서 인정을 못 받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과연 그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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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문학동인지 통권 제62호 『꽃의 지우개』에서「오늘의 화두」전문

  * 신원철/ 시인, 강원대 교수, 2003『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노천탁자의 기억』, 저서로는『역동하는 시』,『현대미국시인 7인의 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