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빗발꽃/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10. 20. 02:11

 

 

      빗발꽃*

 

     정숙자                                                               

 

 

   빗방울 한 톨마다 빗줄기 하나

   빗줄기 한 대마다 빗발꽃 하나

 

   후두두- 후두두- 비가 퉁긴다

   우르릉 꽝 여문 꽃 땅에 찍힌다

   꽃잎 사이 꽃잎, 꽃잎 위에 꽃잎, 꽃잎 건너 꽃잎, 꽃잎

뒤에 꽃잎

   마당 한가득 피고 피고 피고 피고 떠내려가고

   한 사흘 그리 내리면 꽃들은 강을 타고 바다를 돌고

   보편적 개념의 흐름이 된다

   사적인 감정이란 본래

 

   바위의 것

   바람의 것

   오랑캐의 것

 

   사적인 면면으로야 어찌 저리 내릴 수 있나

   온 누리를 골고루 키울 수 있나

   연년세세 이끌 수 있나

 

   빗방울=태초의 열매

   빗줄기=클리나멘(clinamen) 꿈꿨던 맨발

   빗발꽃=만개/낙화 가장 빠른 숨

 

   빗소리 되돌아오면 깨어나지 못할 사막 어디 있으랴

   주룩주룩 빗발꽃 다녀간 길엔

   벌 나비 개구리 까치…… 태양까지 깃 치는 비탈 

 

    * 필자의 신조어. 빗발이 착지하는 순간 동그랗게 부서지며 튀어오르는 모양.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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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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