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발꽃*
정숙자
빗방울 한 톨마다 빗줄기 하나
빗줄기 한 대마다 빗발꽃 하나
후두두- 후두두- 비가 퉁긴다
우르릉 꽝 여문 꽃 땅에 찍힌다
꽃잎 사이 꽃잎, 꽃잎 위에 꽃잎, 꽃잎 건너 꽃잎, 꽃잎
뒤에 꽃잎
마당 한가득 피고 피고 피고 피고 떠내려가고
한 사흘 그리 내리면 꽃들은 강을 타고 바다를 돌고
보편적 개념의 흐름이 된다
사적인 감정이란 본래
바위의 것
바람의 것
오랑캐의 것
사적인 면면으로야 어찌 저리 내릴 수 있나
온 누리를 골고루 키울 수 있나
연년세세 이끌 수 있나
빗방울=태초의 열매
빗줄기=클리나멘(clinamen) 꿈꿨던 맨발
빗발꽃=만개/낙화 가장 빠른 숨
빗소리 되돌아오면 깨어나지 못할 사막 어디 있으랴
주룩주룩 빗발꽃 다녀간 길엔
벌 나비 개구리 까치…… 태양까지 깃 치는 비탈
* 필자의 신조어. 빗발이 착지하는 순간 동그랗게 부서지며 튀어오르는 모양.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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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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