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전(德田)
정숙자
작은 오빠가 무 한 자루를 보내왔다 큰 무는 어느
양상군자가 속속 뽑아가 버렸다고 자잘한 것들뿐이다
눈물이 핑 돈다. 고향의 흙빛, 바람결, 살아 계실 적 어머
니 모습까지가 실황으로 작동한다. 시래기 한 잎인들 소홀히
할까보냐. 찬찬히 다듬는다. 아주 잔챙이는 쪼개어 짠김치
담고, 몇 개는 채 썰어 배추김치 소 넣고, 중간 것들은 동치
미로 앉힐 셈이다. (언제부턴가 생각해 온 대로) 무 꼬리는
달린 채 놔두었다. 어둠 속 뚫고 내려간 힘이 바로 이 꼬랑지
아니었던가. 꼬랑이 아니었던들 푸르스름 궁둥이며 하야말
쑥 허리춤이 가당키나 했을까. 잔털만 뜯어낸다. 그런데 무
꼬리들 용자가 다양하다. 대부분 미끈하지만 어떤 건 잔주름
이 심하고 어떤 건 올통볼통 호된 힘줄이 연이어졌다. 돌멩이
라도 가로막혔던 걸까. 땅강아지들이 괴롭혔을까. 두 갈래,
세 갈래 심지어 위쪽으로 되나오려던 뿌리도 있다. 이리 피하
고 저리 뻗어 보느라 크지도 못한 무 무 무. 한 밭 한 태양 아
래 자라났거늘 어찌 이리 각색이란 말인가. 어쨌든 장하다.
처서께 움터 불과 두세 달 만에 성불(成佛)했느니. 이제 나는
평생토록 무 꼬리를 존중하여 밥 수저에 올릴 것이다. 내 골
수에도 그런 꼬리 하나 달렸다면 풍파(風波)가 두렵지 않으련
만……. 좌우지간 작은오빠한테 전화를 건다.
“오빠, 알만한 위인이라면서 내년에는 뽑아가지 말라하
세요”
“그럴 순 없다 내년에는 더 많이 심으면 되지”
-『애지』200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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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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