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흰나비
정숙자
삼각팬티 두 장에 세 개의 구멍이 났다. 새하얀 융 폭신한
융 칼 구스타프 융을 떠오르게 하는 융 쪼가리를 초가집 지붕
위에 꽝꽝꽝 여물었던 박이에요―원형으로, 들녘 끝 들샘 아
래 꽁꽁꽁 숨어 뜨던 달이에요―난형으로, 한가윗날 걸립패
가 꽹꽹꽹 들어서면 어머님이 쪄 내시던 송편이죠―타원으
로 대고 기웠다. 그런데 웬일일까. ‘뿌듯’ 아닌 ‘허전’이 세 군데
서 날 빤히 쳐다본다. 어찌해야 ‘허전’이 ‘뿌듯’으로 메워질까.
만에 하나 ‘허전’을 입은 채 응급실에 실려 간다면 수근수근거
리겠지. 장난기로 보아주는 이도 혹 있을까. 어떻든 검약의
표상에 그쳐선 안 돼. 변별력을 지녀야만 돼.
그럼 ‘허전’ 속에 글귀라도 적어 넣을까. 아니야! 그건 좀 복
잡해. 그럼 이모저모 잴 것 없이 ‘뿌듯’ 딱 두 자만 새겨 놓을
까. 아니야! 무턱대고 그랬다간 무턱대고 미친 짓이라고 갈겨
버릴 거야. 폐일언하고 너무 가볍거나 어둡거나 산만해선 안
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가 전달되어야만 해.
궁리궁리궁리 끝에 "KOALA*#25불란사.COTTON100
%30.8 / 2×6" 남색으로 나비 세 마리를 수놓았다. 히히! 날
개가 움직인다. 배추꽃 냄새가 난다. 날아오르는 종달새들이
수정 구슬 짓바수는 소리를 낸다. 이 ‘뿌듯’하고 황홀한 춘
몽……. 구멍은 간혹 예기치 못한 것을 체험케 한다.
* 수놓을 때 쓰는 색실의 상표 이름
-『현대시』2006년10월호
----------------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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