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쇠약
정숙자
내 안에 칼 있다. 토씨, 어찌씨 아직 뜨겁다. 하루라도
갈지 않으면 리을 미음 비읍자들이, 시옷 이응 지읒자들
이 이리저리 뒤엉킨다. 아야어여 오요우유 으이도 뒤집어
진다.
숫돌에 칼날 비비는 동안 광속보다 빠른 말이 스친다. 바
람의 경로를 따라, 구름의 문양을 따라 또는 태양의 각도에
따라 휙휙휙 방향키 바꾸는 말들. 하루라도 갈지 않으면 칼
날은 영감(靈感)이 아닌 내 목을 치리라.
정수리 관자놀이에 실시간이 팽팽하다
뭣이 얇아졌을까
숫돌일까 칼자루일까 문어(文語)에 마구 깎인 시신경일까
이제 곧 미치광이가 되지 않을까
벌써 또 생긋 날이 밝았다. 지지난 밤 짧은 꿈에는 두 마리
의 거머리가 쌀섬으로 너울너울 스며들었다. 그 흉측한 예시
는 웬 암호일까. 사소한 꼬투리에도 온 정신이 펄럭인다. 뒤
집힌다. 기울어진다.
내 척추가 칼 아래 있다. 단 하루라도 갈지 않으면 삽시에
결딴나리라. 티읕 피읖 히읗자들아. 머리 없는 귀신들아. 아
야어여 오요우유 으히 히히히 생뚱맞은 웃음소리가 난다.
-『불교문예』200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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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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