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장편소설『28』/ 발췌
"늑대들을 끌고 달아나주기를 바랐어. 되도록 멀리. 기왕이면 아주 먼 곳으로 도망치면서 한 마리씩 차례차례, 모조리 잡아먹히기를 바랐어. 배가 덜 찬 늑대들이 나를 기억해내고 되돌아오지 않도록. 내가 도망칠 수 있도록. 내 사랑 쉬차는 그렇게 해줬어. 늑대들을 끌고 멀리멀리 사라져 줬단 말이지. 나는 살아남은 거야. 환호해야지." P343
" (……) 갱 라인에 굴비처럼 몸을 묶인 채 짐 실린 썰매까지 끌고 달아나야 했을 쉬차한테. 갱 라인이라도 풀어줬더라면, 싸워볼 기회라도 줬더라면, 칼로 밧줄을 끊고 나만 살겠다고 내뺄 것이 아니라." P343
" 끝내 이렇게 될 것을. 결국은 쉬차와 같은 길로 올 것을. 살려고 애쓴 내가 하도 참담해서, 살려고 저지른 짓이 너무 끔찍해서, 필사적으로 불어댄 휘슬이 부끄러워서, 차마 울 수가 없었어." P345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난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P346
"욕망이 없다면 잃어버릴 것도 없어.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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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소설『28』/ 2013.6.16 - 1판1쇄. 2013.7.11 - 1판6쇄 <도서출판 은행나무> 펴냄
* 정유정/ 전남 함평 출생, 2007년『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
2009년『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
2011년 장편소설『7년의 밤』'올해의 책'으로 선정.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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