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백과를 상재하다
조재형
호미 한 자루 곳간에서 안식년 중이다
댓 마지기 전답에 필사한 생애
검버섯 만개한 호미날이 곱사등처럼 굽어 있다
내훈의 담장에 가려 학교 문턱은 얼씬도 못했네만
무논에 편집하고 텃밭에 출고한 파지는
층층이 쌓여 있다
바람서리로 퇴고하랴
땀방울 교정 그칠 날이 없었다
삽과 괭이로 밭고랑에 써 내려간 노을빛 농어(農語)
풀벌레가 밤새 구전하여 들창에 받아 쓴 별빛 달빛 자모음
산 너머 다랑이 논에 채록되어 있다
철새들의 혹독한 두루마리 비평과
고추바람의 감수를 거쳤다
태풍이 갈아엎은 이랑마다
끌쟁기가 쳐놓은 밑줄 위로
창공을 향해 꼿꼿이 발기하던 청보리들
수식과 비유는 한 뿌리도 모종하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종아리로 직파한 맨문장들
손발이 부르트며 추록을 엮었다
은하계의 원로 하늘땅이 으뜸으로 후원하셨다
햇살과 단비의 공저로 마친 탈고,
철철마다 오일장에 연작으로 상재했다
번지르한 책상물림 잣대로는 턱도 없어
나잇살 깨나 자셔야만 완간이 수월하다
오곡百果 대전집
* 시집『지문을 수배하다』에서/ 2012.10.10 <도서출판 지혜> 펴냄
* 조재형/ 전북 부안 출생, 2011『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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