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이은봉
엷은 안개 더미를 옆구리에 끼고 내리는 비
아픈 제 가슴을 칼로 저미며 내리는 비
버들가지를 흔들고, 망초 꽃대궁을 흔들고
찢겨진 하늘을 담은 저수지 위로 내리는 비
눅눅한 땅, 더욱 눅눅하게 적시는 저 여름비 속에는 무
엇이 사나 해와 달이 가도 가지 않는 슬픔이 사나 설움이
사나 우울이 사나
쑥대궁을 흔들고, 신우댓잎을 흔들고
머리칼을 어지럽게 풀어 헤친 채 내리는 비
입 꽉 다물고 땅바닥만 쳐다보며 내리는 비
느릿느릿 한세상 죄 적시며 내리는 여름비
* 시집 『걸레옷을 입은 구름』에서/ 2013.6.21 <(주) 실천문학> 펴냄
* 이은봉/ 충남 공주 출생, 1984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발간한 공동시집『마침내 시인이여』를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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