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낮달 외 1편/ 이주송

검지 정숙자 2024. 12. 9. 02:00

 

    낮달 외 1편

 

     이주송

 

 

  저 방패연 누가 띄워 놓았나

  바람 좋은 풀밭이 아닌

  일월 강가 하늘에 콕, 하고

  박혀 있다

 

  방패연은 수면을 치고 날아올랐으리라

  새들의 날갯짓을 흉내 내며

  제 몸에 이어진 얼레를 

  능숙히 돌리는 작은 손을 생각했으리라

 

  툭, 하고 끊어질 듯한데

  저 방패연 곤두치지 않는다

  구멍 난 심장에 들인 바람만 흘려 보낸다

 

  그저 흔들리고 있는 것인데

  나는 왜 멈췄다고 느낀 것일까

 

  어머니는 세상 사는 일은

  저 방패연을 날리는 것이라고,

  그렇게 인연을

  감고 풀어 가는 거라고 하였는데

 

  얼레를 돌리는 아이는 지금

  태양 반대편에 서 있을까

  당당히 동쪽 하늘과 맞서고 있을까?

 

  실빛 하나로 당신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방패연은 가만히 있는데

  층층구름이 바삐 이동한다

     -전문(p. 48-49)

 

 

       ----------------

     엄마의 끝

 

 

  키질하는 엄마

  먼지 쌓인 낟알들을 붕 띄워 놓고

  그 틈에 가벼운 잡티를 날려 버린다

 

  엄마는 그렇게 끝을 잘 다룬다

  고양이 꼬리같이 의뭉스러운 아버지의

  말끝에 붙어 있는 검불을 눈치채기도 하고

  동전 몇 닢 비는 합산의 끝에서

  나를 불러 세우기도 한다

 

  키를 위아래로 흔들어

  이리 뒤치며 저리 까부르는 동안

  거슬러 받지 못한 사랑도 있었을까

  자칫 알곡까지 훔치는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눈썹 끝에 눈물이 묻기도 한다

 

  평생, 엄마의 박한 이문은

  이러저러한 끝에서 겨우 챙긴

  낙차의 것들이었다

  거기서 건져낸 종자는 소박하게 여물어

  또 그해 가을의 키질로 이어지곤 했다

 

  문득 내가 잡티들처럼 가벼워져

  고된 낙차에서 떠 있다고 느낄 때

  엄마가 숨겨 놓은 끝의 종량,

  저르륵저르륵

  겹겹의 키질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전문(p.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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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식물성 피』에서/ 2022. 10. 21. <걷는사람> 펴냄

 * 이주송/ 전북 임실 출생, 2020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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