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아버지 생각/ 윤성관

검지 정숙자 2024. 12. 7. 00:01

 

    아버지 생각

 

     윤성관

 

 

  보름달에 취해 헛발 디뎠나, 세상이 무서워 숨고 싶었나, 입술 꼭 다문 호박꽃 안에 밤새 나자빠져 있던 풍뎅이는 내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고

 

  뒤주 바닥을 긁는 바가지 소리,

  호박꽃이 핀 시간은 짧았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풍뎅이로 비유된 아버지는 호박꽃 안에서 단정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 있지 않고 '나자빠져' 있다. 나자빠져 있다는 형상화는 생경한 이미지를 생성하면서 시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구실을 한다. 그 표현 속에는 타락한 듯 자신을 내던져버린 사내의 이미지가 짙게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는 늘 아들인 "내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어머니는 아들을 앞세워 남편의 외유를 차단하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제2연에서 "뒤주 바닥을 긁는 바가지 소리"는 쌀이 떨어져서 실제로 뒤주 바닥을 긁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외유가 못마땅해 잔소리하며 포악을 떠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했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때문에 호박꽃 이 핀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아버지의 외유가 길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 (p. 시 14/  104-105) <안현심/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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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호박꽃이 핀 시간은 짧았다』에서/ 2022. 4. 15. <지혜> 펴냄

 * 윤성관/ 서울 출생, 2020년『애지』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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