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천지백색일색(天地白色一色) 외 1편/ 나석중

검지 정숙자 2024. 12. 5. 01:04

 

    천지백색일색天地白色一色 외 1편

 

     나석중

 

 

  눈 온다 폭설이다

  유언 없는 적멸의 얼굴 위에

  눈은 기존을 다 바꿀 듯이 오고

 

  저 무혈혁명의 질서 속에

  누구를 미워할 수 있으랴

  누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오셔서

  다시 나를 낳을지라도

  나는 또 가난한 시인이 될 것이다

 

  죽은 세상이 부활해야 한다고

  호령호령 눈 온다

     -전문(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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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오늘은 어떤 꽃을 만날까

  하늘은 개었고 마음은 설렙니다

 

  나와 모르는 한 무리는 저쪽으로 가지만

  나는 홀로 이쪽으로 가봅니다

 

  저쪽의 풍경은 어떨지 자문하는 사이

  인기척이 끊길 만한 곳에 꽃이 피었습니다

 

  꽃은 누굴 기다리는 힘으로 핍니다

  기다린다는 게 희망이지요

     -전문(p.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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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하늘은 개고 마음은 설레다』에서/ 2024. 12. 7. <북인> 펴냄

 * 나석중/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숨소리』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저녁이 슬그머니』『목마른 돌』『외로움에게 미안하다』『풀꽃독경』『물의 혀』『촉감』『나는 그대를 쓰네』등, 시선집『노루귀』, 미니시집(전자)『추자도 연가』『모자는 죄가 없다』디카시집(전자)『라떼』『그리움의 거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