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빗소리*
나석중
종일 빗소리에 갇힌 몸
창문 닫아도 스며드는 물비린내
매미 울음 그치고 비구름처럼 엉기는 온갖 번뇌
내 뜻과 무관하게 태어난 몸 갈 때도
내 뜻과 무관하게 가겠지만
겨우겨우 핀 꽃들 다 지겠고
생계를 운반하는 바퀴들도 미끄러질까
무슨 의도를 묻겠다고 밖에 나간다면
낡은 지팡이 같은 몸으로는 낙상하기 십상이다
종일 몸에 갇히는 빗소리
-전문-
* 우성종일雨聲終日: 남병철南秉哲(1817~1863, 46세)의 시 「하일우음夏日偶吟」에서.
해설> 한 문장: 마치 두보의 시를 보는 듯한 처연함이 서려 있다. 두보 시에 쓸쓸히 우는 원숭이 소리가 서경의 내면화라면 "종일 몸에 갇힌 빗소리"는 내면의 서경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처연함은 몸. 병듦 그리고 죽음에의 직면 등이 그 이유일 터이다. 시적 주체는 아픈 몸으로 방안에 갇혀 있지만 지는 꽃 걱정 그리고 밥벌이 나선 조그마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등으로 생각이 깊어간다.
이 시의 절창은 "무슨 의도를 묻겠다고 밖에 나간다면/ 낡은 지팡이 같은 몸으로는 낙상하기 십상이다"라는 구절이다. 예술이란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인가를 묻는 것이라는 명제가 있다. 그러나 육체적 신고辛苦는 이러한 물음마저 수월치 않게 한다. 왜 꽃은 지는 것이며 사람은 왜 먹고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비는 종일 내리는가 등등. 이 시에서 어떤 해탈을 노래했다면 전혀 다른 포즈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석중 시인답게 조금은 쓸쓸하지만 과장을 집어던지고 사실적 정황에서 시적 세계를 구조화 하고 있다. 노장 시인의 시에 대한 발분 서정과 변방의 쓸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정성을 다한 조촐함'이라는 말이 이 시집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 하겠다. (p.시 35/ 론 103) <우대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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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하늘은 개고 마음은 설레다』에서/ 2024. 12. 7. <북인> 펴냄
* 나석중/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숨소리』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저녁이 슬그머니』『목마른 돌』『외로움에게 미안하다』『풀꽃독경』『물의 혀』『촉감』『나는 그대를 쓰네』등, 시선집『노루귀』, 미니시집(전자)『추자도 연가』『모자는 죄가 없다』, 디카시집(전자)『라떼』『그리움의 거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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