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책 읽는 거지, 휴가 가는 거지
윤석산尹錫山
1
중국의 역사상 가장 어지러운 시대의 하나로 흔히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를 거론하곤 한다.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뚜렷한 이념도 없이 다만 술수와 기교만 살아, 세상을 횡행하던 시대. 아침에 왕조가 일어났다가는 이내 저녁이면 망하는, 수많은 나라가 일어났다가는 사라졌던 시대. 그러므로 이때에 이르러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세상과 등을 지고 살았었다. 이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유영劉伶 · 완적阮籍 · 혜강嵇康 · 산도山濤 · 상수尙秀 · 완함阮咸 · 왕륭王戎 등, 일컫는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다. 이들은 세상과 자신의 뜻이 서로 어긋나므로 세상을 버리고 살았던 인물들이다.
부귀에 연연하지 않고, 아무리 높은 권세를 지닌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됨이 마음에 차지 않으면, 이내 백안시白眼視했던 사람들. 그러므로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또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오므로, 이들의 삶은 곤궁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유명하였다. 정치적 사회적 현실은 그들의 숨통을 죄는 이야기이므로, 이들은 현실적 삶을 벗어난 이야기만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들의 대화를 '현실의 혼탁함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맑은 이야기' 곧 '청담淸談'이라고 이름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들의 곤궁함은 세상으로부터 무엇도 얻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어진 훈장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들은 곤궁함을 때때로 자랑스러움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비록 세상과 자신의 뜻이 어긋나도, 그 어긋난 세상에서 다만 한걸음 비껴나 쓸쓸하지만, 가장 자유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p. ~281)
또한 이들과 비슷한 시기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은 세상과 자신의 뜻이 서로 어긋나므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른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세상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는 사람, 과연 이 세상에 이러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 버클리 근교에는 자유인들이 참으로 많다. 비록 비렁뱅이와 같이 한여름에도 더럽고 두꺼운 옷을 입고, 집도 없이 가족도 없이 또 먹을 것도 없이 사는 사람들. 그러나 오디오 시스템의 무거운 라디오를 언제나 들고 다니며 음악을 듣는 사람. 또는 남들은 출근하기 바쁜 아침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거지꼴의 사람들.
이들이 거지인지는 알 수가 없어도, 그 외양은 분명 거지와 같다. 아무 데서나 자고, 더러운 옷을 입고, 며칠씩 씻지 않은 모습이 완연한 이들의 행색은 거지나 다름이 없어도, 이들을 거지라고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이른 아침 찻집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책을 읽는 이들을 거지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적합하지를 않다. 무거운 오디오 시스템을 들고 다니며, 음악에 심취되어 있는 그들이 비록 집이 없고, 가족이 없고 또 거지 행색을 하고 있어도 선뜻 거지라고 부를 수는 없을 듯하다.
이들이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시대인 21세기를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됨이 남다른 것은 아닌지. 자본과 시장원리가 우선하는 이념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들이 구가하는 자유가 저 위진남북조의 죽림칠현과 같이 그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p. ~282)
이곳 버클리 대학이 소재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근교는 1950년 60년대 비트 문학이 일어난 지역이기도 하다. 보헤미아 예술가 그룹들이 그 중심이 되는 이들 비트 제네레이션은, 자신들의 삶이 관습적이고 또 획일적인 사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결같이 허름한 옷과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는 관심조차 두지를 않았으며 마약, 재즈, 섹스, 선불교禪佛敎의 수양 등으로 생기는 고도의 감각적 의식을 통한 개인적인 해방과 정신의 정화만을 중요하다고 여겼다.
「부조리하게 자라다.(Growing up absurd)」(1960)의 저자인 폴 굿먼을 비롯한 비트족의 대변인들은, 현대사회는 즐거움도 또 목적도 없으므로, 자신들이 이 현대라는 황량함으로부터 도피하고, 또 반항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또 충분히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므로 이들 비트 시인들은 시를 까다로운 강단에서 해방시켜 '거리로 돌려보내는' 운동을 펼쳤고, 이를 위해 남루한 옷을 입고 머리를 헝클인 채 거리에 서서 프로그레시브 재즈의 반주에 맞추어 자작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세상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 그러므로 세상은 이들을 '벌거벗은 천사(Naked Angels)'라고 부르기도 한다. 관습과 제도를 벗어버린, 그러므로 절대 자유를 구가했던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이곳 버클리 대학이 있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60년대 히피문화가 일어난, 히피문화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비트 세대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사회통념이나 제도, 또 가치관들을 부정하고 인간성 회복, 자연에의 귀의를 주장하며 이들은 완전한 자유를 추구했다. 이와 같은 이들 히피의 젊은이들은 1960년대부터 이곳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20세기를 대표하는 청년문화의 하나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극단적인 자유주의를 추구하고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개인적인 비판을 시도했으며, 전후 기술주의와 업적주의 등의 문명 맹신적인 문황 대한 저항을 펼치기도 했다. (p. 282~283)
이와 같은 문화 전통이 있는 이곳 버클리 대학 근처에서 남루의 복장으로 커피숍에 앉아또는 히피의 문화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세상과 그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 그러므로 세상으로부터 격리가 된 사람들. 마치 저 위진남북조 시대의 세상을 등진 사람들과도 같이 이들은 비록 옷은 남루해도,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저자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적 사회 현실이나 정치 현실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고, 오늘도 '미국식의 청담淸談'을 외롭게 자기과 읊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p. 283~284)
2
연암 박지원은 그 자신의 문집 『연암집』에, 가난하여 종로에서 구걸을 하며 사는 거지 '광문자廣文者'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광문자는 비록 가난한 거지이지만, 그 마음이 바르고 또 인정이 많아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한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굶어 죽은 다른 거지를 남모르게 장사를 지내 준다거나, 비록 가난하지만 돈이 옆에 지천으로 쌓여 있어도 자신의 돈이 아니면 조금도 탐내는 마음조차 갖지 않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연암은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이라는 글을 통해, 똥이나 치는 사람인 엄행수의 덕행을 찬양하고 있다. 연암은 이렇듯 걸인인 광문자나 똥 치는 사람인 엄행수를 통하여 위선과 술수로 가득 찬 당시 양반사회를 비판하는 한편, 진정한 삶의 가치는 그 사람의 신분이나, 그가 하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곳 버클리 대학 근처에는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읽는 허름한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자리와 근무시간(?)을 정해 놓고 출퇴근하듯이 동냥을 하는 사람 또한 있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일 년 내내 동냥을 해서 번 돈으로 휴가철을 맞아 휴가를 떠나는가 하면, 휴가를 다녀와서는 그간 수입이 줄었다고, 자신이 정해놓은 근무시간을 넘기며, 오버 타임을 해서 동냥을 하기도 한다. (p. 284~285)
이들은 비록 동냥을 해서 살아도, 이 동냥이라는 일도 엄연한 자신의 직업이라는, 자본주위적인 직업의식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출근을 하고 또 퇴근하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정해진 자리에서 동냥이라는 노동을 삶의 정당한 방법으로 택한 사람들이 된다. 세상의 사람들이 삶의 여유를 즐기기 위하여 휴가를 떠날 때에는, 자신도 역시 휴가를 감으로 해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거지들이 된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일을 하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시대를 우리는 일컫는바 진정한 시민사회의 등장이라고 말한다. 18세기 연암이 자신의 소설 「광문자전」이나 「예덕선생전」을 통해 강변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일'에 귀천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수행하는 자세나 태도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동냥을 하는 것을 '일'로 구분하기는 어려워도, 이들 뻔뻔한 자본주의 의식을 지닌 버클리 근교의 거지들은 스스로 자부하고 있는 듯하다.
샌프란시스코 근교 월넛 크릭이라는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시인 유봉희는 이러한 거지를 시로 노래하고 있다. "십 년 넘게 이 거리에서 산다는 폴/ 자잘한 살림도구를 몽땅 카트에 실어 옆에 놓고/ 따뜻한 거실인 양 땅바닥에 편안히 앉아 있다." 시인은 살림살이를 모두 카트에 실은 거지 폴을 여느 사람마냥 그 마음이 편한다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바다 안개가/ 무거운 몸짓으로 떠날 줄 모르는 그런 날이면 패트리시카라는 러시아 식당으로 들어가서/ 보슈 숩 한 그릇으로 몸을" 녹이고, "그래도 몸이 녹지 않으면 보드카 한 잔을 시켜/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겨 거리를 내다보는" 삶의 여유를 갖는 거지 폴을 바라본다.
이러한 삶의 여유 속에서 "어제 휴가에서 돌아와/ 오늘은 오버타임을" 하는 폴. 그런가 하면 "그의 입에는 비틀즈 노래가 줄줄이 매달고"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항상 반음이 처지"는 슬픔이 담겨져 있다. 그렇지만 "그 가락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입으로 금방 옮겨" 가므로, 이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p. 285-286)
'책을 읽는 거지', 또는 '휴가를 떠나는 거지',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오늘이라는 현대사회를 견디지 못하고, 그 사회와 비껴간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십분 발휘하여, '동냥'도 엄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 이가 곧 자본주의 시장이 가장 발달한 오늘 미국의 또 다른 두 얼굴이 아닌가 생각된다. ▩ (p. 286.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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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문인 보고서 2 『시인 윤석산』 '버클리에서 보낸 편지' 에서/ 2022. 9. 28. <화성시립도서관> 펴냄/ 비매품
* 윤석산尹錫山/ 1947년 서울 출생, 1967년《중앙일보》신춘문예(동시) 당선 & 1974년《경향신문》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바다 속의 램프』『온달의 꿈』『처용의 노래』『용담 가는 길』『적 · 寂』『밥나이, 잠나이』『나는 지금 운전 중』『절개지』『햇살 기지개』등, 저서『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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