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가는 것이다/ 김충규

검지 정숙자 2013. 4. 15. 01:07

 

 

    가는 것이다

 

     김충규

 

 

  어둠에 발목이 젖는 줄도 모르고 당신은 먼 곳을 본다

  저문 숲 속으로 시선이 출렁거리는 걸 보니 그 숲에

  당신이 몰래 풀어놓은 새가 그리운가보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발목을 다친 새이므로

  세상의 어떤 숲으로도 날아들지 못하는 새이므로

  혀로 쓰디쓴 풍경이나 핥을 뿐

  낙오가 우리의 풍요로움을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당신도 나도 불행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어둠에 잠겨 각자의 몸속에 있는 어둠을 다 게워내면서

  당신은 당신의 나는 나의

  내일을 그려보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태양의 순결을 믿고 있으므로

  새를 위하여 우리 곁에도 나무를 심어 숲을 키울 것이므로

  그래, 가는 것이다 우리의 피는

  아직 어둡지 않다

 

  * 추모시집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에서/ 2013.3.18 <(주)문학동네> 발행

  * 김충규/ 경남 진주 출생, 1998년『문학동네』로 등단

  *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물 위에 찍힌 발자국』『아무 망설임 없이』

  * 제1회 <미네르바작품상>수상, 제1회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 1965~2012.3.18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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