銀星 갤러리
박수현
강 노인은 훔친 의치를 물 컵에 모았다
최 노인은 변기 앞에 쭈그려 앉아 빨래한다며 두루
마리 화장지를 풀었다
심 노인은 패드 넣은 비닐봉지를 페니스에 묶은 채
복도를 서성였다
서 노인은 씹던 껌과 식은 밥 뭉친 경단을
다른 이게게 먹이려다가 자칭 보안관 김 노인에게
쥐어 박혔다
박 노인은 늘어진 노랫가락을 웅얼대며 현관문에
기대고 있었다
저녁 8시, 요양보호사 미나 씨가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두 알의 수면제를 먹고
노인들은 저마다 잠으로 빠져들었다
허기진 입들이
당나귀처럼 커지던 귀가 지워졌다
낮 동안 금시계처럼 번쩍거리던 눈길도
벽에 걸린 풍경화처럼 평온해졌다
가을, 겨울, 여름이 지나가도
이곳은 언제나 나른한 봄날
노인들 흉곽을 맴돌며
쟁여둔 그 많은 소리 다 삼킨 괘종소리만
혼자 복도를 빠져나와
어느 먼, 먼 은하로 흘러가고 있었다
------------
* 시집 『복사뼈를 만지다』에서/ 2013.2.28 <시안> 펴냄
* 박수현/ 대구 출생, 2003년『시안』으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천시雨天市/ 장이엽 (0) | 2013.04.10 |
|---|---|
| 햇빛수의/ 최동은 (0) | 2013.04.10 |
| 청평유원지/ 남궁선 (0) | 2013.03.11 |
| 단단한 꽃/ 박소원 (0) | 2013.03.10 |
| 기산 저수지/ 박경림 (0) | 2013.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