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시雨天市
장이엽
도시가 들어설 때는 소문이 먼저 돌았다
풍경이 시끄럽게 울고
거리를 뒹굴던 쓰레기들이 구석으로 밀려왔다
훅 불어온 바람에서 비린내를 맡은 새들은 분주해졌다
후두두 몰려오는 빗방울들은
순식간에 도시를 일으켜 세웠다
우천시는 금방 우산 쓴 사람들로 붐볐다
비가 오면 새 주소를 갖는 도시, 雨天市
차단기로 출입을 관리하는 건물 틈에서 불쑥 태어나는
도시
황사바람과 방사능비에 꾹꾹 닫힌 창문을
슬그머니 열게 하는 도시
개척자들은 출항하는 배편에 빠르게 환승해 돌아가고
부유하는 유랑자들이나
구름의 문자가 궁금한 이들만이 우산을 들고 찾아가는
도시
비 오면 나타났다가 비 그치면 사라지는 도시
무대 뒤로 악기는 옮겨지고 공연은 불투명해지기도 하
지만
지붕 아래로 모여든 약속들이
명랑한 목소리로 술렁거리며 번성하는 도시
예정되었던 오늘의 일정이 취소되고
더 먼 미래로 미루어지므로 때로는 가고 싶은 도시
소풍 가방 멘 아이가
우천시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비 그치면 사라졌다가 비오면 나타나는 도시, 雨天市
* 시집 『삐뚤어질 테다』에서/ 2013.1.30 <도서출판 지혜> 펴냄
* 장이엽/ 전북 익산 출생, 2009년 『애지』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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