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최서림

검지 정숙자 2010. 11. 7. 23:13

  

   내 아들의 말 속에는


     최서림



   네 아들의 말 속에는 세심해서 상처투성이인 나의 말이 들어 있다 거간꾼으로 울퉁불퉁 살아온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꺼칠꺼칠한 말이 숨 쉬고 있다 조선 후기 유생 崔瑞林의 漢詩가 들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내 아들의 비뚤비뚤 기어가는 글자 속에는 내 아버지처럼 글자 없이도 잘 살아온 이서국 농부들이 공손하게 볍씨를 뿌리고 있다 눈길을 더듬으며 엎어지며 쫓기듯 넘어온 알타이 산맥의 시린 하늘과 몽골 초원의 쓸쓸한 모래먼지 냄새가 박혀 있다 바벨탑이 무너진 후 長江처럼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온 광목 같은 말에는 우리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흘린 눈물과 피와 고름만큼의 소금이 쳐져 있다 내가 살고 있는 堂고개에는 비린 말들이 60년대 시골김치처럼 더 짜게 염장되어 있다 가난해서 쭈글쭈글한 말들이 코뚜레같이 이 동네 사람들의 코를 꿰고 몰고 다닌다



   *『현대시학』2010-10월호 <신작특집>에서

   ------------------------------------

   * 최서림/ 경북 청도 출생, 1993년『현대시』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 곳 참치/ 최호일  (0) 2010.11.16
우유부단 외1편/ 김상미  (0) 2010.11.12
책상과 싸우다/ 서안나  (0) 2010.10.27
비행법/ 김희업  (0) 2010.10.23
벽 속의 여자/ 김명서  (0) 2010.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