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비행법/ 김희업

검지 정숙자 2010. 10. 23. 01:25

    

    비행법


     김희업



   그 새는 단 한 번의 비행 기록도 갖고 있지 않다


   아파트 화단 귀퉁이로

   한 생이 폭삭 내려앉는 끝소리

   물론 그것으론 죽음의 단서가 될 수 없다

   짤막한 한 줄 비행운도,

   추락의 순간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착지가 서툰 솜씨가 그렇고

   새라기보다,

   아무래도 소녀라 해야겠다


   소녀를 의문의 죽음으로 끌어당긴 중력은 무엇이었을까

   누구는 둥지를 틀지 못했기 때문이라 단정 내렸고,

   고층에서 뛰어내린 것은 계획된 것이라고 했다

   부화되지 못한 새끼 새는 날 수 없는 법

   새는 하강하면서 눈을 뜨지만

   비행법을 모르는 소녀는

   구름과 뒤엉킬까 두 눈 감아버렸는지 모른다


   처음 세상에 나올 때처럼

   머리부터 디밀었을까

   소녀가 닦아놓은 손거울보다

   비정하게 맑은 하늘


   소녀의 공중 비행을 우러러보던 지상의 유일한 목격자

   화단의 꽃이,

   죽음을 미리 애도하고 있었는지

   고개가 반쯤 꺾여 있다

 


  * <현대시> 2010-10월호/ '현대시작품상 이달의 추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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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업/ 서울 출생, 199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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