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유원지
남궁선
번개가 치자 빗줄기가 잠시 드러났다 사라진다
빠른 속도로 귀가 커지고
천둥소리 기다린다
(이쯤 쓸 때, 웅이가 죽었다는 전화가 왔지)
산중턱에 흉가처럼 몰락한 유스호스텔이 있다
사내들이 현관으로 몰려가 담배를 피운다
번개가 한 번 더 쳐 줄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는 가로등 아래서만 내리고
(기차를 타고 장례식장에 간다네)
아람단이었던 소년들이
담배를 비벼 끄며 모텔이나 찜질방에 가자고 일어선다
화요일의 죽음이 일요일의 죽음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누군가는 화요일에 죽고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몇 백 년 동안 늙어 가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에선 울음과 웃음이 어쩔 줄 모르고 섞여 있지)
극기 훈련을 마친 소년들이 우르르 단잠에 빠질 때
빗속에서 타오르는 은행나무를 상상하느라
밤새 늙어 버린 사내가 있다
(새롭게 단장한 청평 역사에는
사라지는 얼굴을 기념하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다네)
* 시집『당신의 정거장은 내가 손을 흔드는 세계』/ 2013.1.30 <(주)천년의시작>펴냄
* 남궁선/ 강화 출생, 2011년『시작』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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