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이기적 사물들 외 1편/ 이초우

검지 정숙자 2024. 11. 5. 01:59

 

    이기적 사물들 외 1편

 

     이초우(1947-2023, 76세)

 

 

  숟가락의 뇌에는 좌뇌만 있는 걸까

 

  뽀글뽀글, 끓기를 다한 국 맛본 숟가락

  내가 숟가락을 손에 쥔 채 국그릇을 꺼내러 갈 때였어

  영문도 모르게 친구와의 갈등이 불쑥, 그 순간

  토라져 버린 숟가락, 내 손바닥을 빠져나가 

  속 좁은 미꾸라지처럼 온통 빠둥빠둥 바닥에 나뒹굴었지

 

  내가 냉장고에서 멸치 통을 꺼낼 때였어

  공사 현장에서 민원인, 내 머릿속에서 삿대질에다 땡고함

  지르는 소리, 그 멸치통

  내 다섯 손가락 팽개치고 화들짝 바닥에 떨어져

  제 내장 다 비워버렸지

  물도 없는 주방 전체가 커다란 수조 되어 반짝반짝 멸치 떼들

  휙휙 떼 지어 헤엄쳐 다녔어

 

  내 육신, 지독히도 긴 구직 한파

  믿었던 심사 내 이름 사라져, 어디 이게 한두 번이었냐

  내 마음 달래러 계단 바닥 밟을 때

  '난 왜 이렇게 안 돼'하는 순간

  발목 접질려 계단 바닥에 쿵 하고 넘어져 버렸지

 

  얼굴 벌겋게 상기된 또 다른 내가

  고개 푸욱 숙이고

  멍하니 주방 바닥 걸레질하고 있는 모습 보였어

        -전문(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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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의 팽이

 

 

  그가 그린 한 그루의 사과나무, 헤실헤실 볼그레한 

  얼굴들 열려 있고

  그 아이들 중, 때론 바람결에 얼굴 부비다 앳된 얼굴

  멍이 들기도 했던, 그와는 속살 육질

  그렇게도 닮은 한 알

  불혹을 넘기고 잠시, 그만 낙과落果해버린 것

 

  그날 이후 그는 하던 일 멈추고 쓰레미 더미에나 있을

  낙과한 사과를 찾아,

  버려진 가구, 때 묻은 명함, 누군가의 오른손 마음을

  사과나무 잎처럼 나부끼게 했을 선물용 봉투

  집안 가득 쌓이고 쌓인 자식 친구들, 이미 고물상이

  돼버린 그의 집

  팔순 아버지 뒤따라 나서며 욕지거리 주문을 외곤 하지만

  그에겐 익숙한 한 줄기 바람

 

  오늘도 그는 이미 유효기간이 죽은 컵라면을, 떨어진 사과

  그림자를 앉혀놓고 후룩 후루룩, 면식 한 번

  없는 수많은 명함들

  싱글벙글 끈끈한 인연 고무줄로 홀쳐맨다

 

  미흔다섯 소년, 어슬렁어슬렁 달빛 쏟아지는 밤

  잘잘잘, 뒤따라 뒹굴어오는 낙엽을

  고개 돌려 물끄러미 바라본 그

 

  어릴 적 어머니 아버지 버린 아이처럼 혼자 두고

  시장 일로 집을 비울 때

  그도 프로이트의 어린 손자*처럼

  방바닥에 줄팽이를 던지며 혼자 놀았을 테지

    -전문(p. 40-41)

 

    * 프로이트가 손자의 줄팽이 놀이를 관찰 정신분석을 연구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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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고시집 『프로이트의 팽이』에서/ 2024. 10. 20. <한국문연> 펴냄

 * 이초우/ 1947년 경남 합천 출생, 부경대학교 해양생산시스템 공학과 졸업, 2004년『현대시』로 등단, 시집『1818년 9월의 헤겔선생』『웜홀 여행법』 // (2023. 12. 5-영면), 2024 10월 유고시집『프로이트의 팽이』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