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장미여관으로
마광수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 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필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시,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없는 보디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 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 체 주절주절
커피는 초이스 심포니는 카라얀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
가자, 장미여관으로!
블루투스는 싫어 디스코는 더욱 싫어
난 네 발냄새를 맡고 싶어, 그 고린내에 취하고 싶어
네 뾰족한 손톱마다 색색가지 매니큐어를 발라 주고도 싶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러브이즈 터치
러브 이즈 필링
-전문(1955년 作)/ p_52
▶변태적 상상력과 창조적 개성의 에로티시즘(발췌)/ 마광수론(2)_ 조명제/ 문학평론가
마광수는 원래 소설보다 시로 먼저 등단한 사람이다. 연세대학교 박사과정 중이던 1977년 월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의 결혼」「겁怯」「장자사莊子死」등 6편의 시가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의 초기 시는 도발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으로 신선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선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그의 자유로운 성 담론의 작품(위의 시)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다.
*
시인이 가장 싫어하는 위선의 가면을 홀라당 벗어던지고,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성의 문제를 아무런 가식 없이 솔직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일관되게 정직성의 공간에 위치한다. 지식인의 체면과 교수의 체통을 조금이라도 지켜야지 이게 뭐냐라고 하는 생각은 유미주의적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마광수에게는 통하지 않는 시각이다. 정신이 육체를 비재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라는 주기론자主氣論者인 그는 에로티즘의 가치와 생리적이고 실제적인 성격을 신념으로 삼는다. 우리가 가식을 버리고 심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내가 미처 그러내 놓고 하지 못하는 성적 담론을 참 솔직하고도 당당하게 대변해 주는구나 싶을 것이다.
당시 연세대학교 앞에 '장미여관'은 없었다는 말이 있다. 장미여관이든 동백장이든 그 여관의 이름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 이름은 흥미롭게 잘 지어냈다 싶다. 어디엔가는 있을 법하고 또 있을 터인 '장미여관'은 섹스의 공간을 암시하는 기표로 작용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은 대개가 '모텔'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여관', '여인숙'이라는 간판을 간혹 만나게 되면 그리운 추억처럼 정겹기마저 하다. 대학 강단에 서던 시절 학생들에게 한자단어 쓰기 실습을 더러 시켰는데, 단어 중 '여관'을 포함시켜보곤 하였다. 한자 문맹 교육 덕분에 학생들 대부분이 한자로 못 쓰거나, '여관'의 '여'자밖에 못 쓰거나 하였다. 그마저도 그 쓴 글자가 '女'자였다. '여관'이나 나그네가 머물고 가는 집旅館이기보다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 통정하는 집쯤으로 알았을 것이 분명하다. 마광수 시인은 그 같은 사회적 관습과 통념의 오해까지를 역용逆用하여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필링"을 노래한 셈이다. (p. 시 52/ 론 52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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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4-7월(665)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 조명제 문학평론가> 에서
* 마광수(서울. 1951~2017, 66세)/ 1989년 장편소설『권태』로 데뷔, 대표작『즐거운 사라』, 단편소설집中『마광수 교수, 지옥으로 가다』는 마광수 자신의 가상적인 사후 세계를 다룬 작품
* 조명제/ 경북 청송 안덕 핏골 직동稷洞출생, 1984~85년『시문학』 시 부문 천료, 1985년『예술계』 문학비평 부문 등단, 시집『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노래』, 문학비평집『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윤동주의 마음을 읽다』, 동인시집(공저)『남북시』 5권, 『한국시의 흐름과 역사』, 『글짓기 교실』, 편저『대학국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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