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 · 8/ 서녘/ 면류관(시 3편)
김남조(1927-2023, 96세)
바람 부스러기로
가랑잎들 가랑잎나비로 바람 불어 갔으니
겨울나무는 이제
뿌리의 힘으로만 산다
흙과 얼음이 절반씩인
캄캄한 땅속에서
비밀스럽게 조제한 양분과 근력을
쉼 없는 펌프질로
스스로의 정수리까지
밀어올려야 한다
백설로 목욕, 얼음 옷 익숙해지기,
추운 교실에서 철학책 읽기,
모든 사람과 모든 동식물의 추위를 묵념하며
삼동내내
광야의 기도사로 곧게 서 있기
겨울나무들아
새 봄 되어 초록 잎새 환생하는
어질어질 환한 그 잔칫상 아니어도
그대 퍽은
잘생긴 사람만 같다
- 전문 p. 87/ (출처, 제17시집 『심장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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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녘
사람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그림자 눕듯이
그림자 위에 바람 엎디듯이
바람 위에 검은 강
바람이면 어때
안 보이면 어때
바다 밑 더 패이고
물이 한참 불어난들
하늘 위 그 하늘에
기러기떼 끼럭끼럭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보이면 어때
- 전문 p. 93/ (출처, 제10시집 『빛과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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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류관
가시나무의 가시 많은 가지를
머리 둘레 크기로 둥글게 말아
하느님의 머리에
사람이 두 손으로 씌워드린
가시면류관
너희가 준 것은 무엇이든 거절치 않노라고
이천 년 오늘까지 하느님께선
그 관을 쓰고 계신다
- 전문 p. 120/ (출처, 제16시집 『귀중한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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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조시집 회상 시선집 『저의 마지막 때 영혼과 사랑은 눈 감지 않게 하소서』에서/ 구명숙 엮음 2024. 10. 10. <국학자료원 새미> 펴냄
* 김남조/ 1927년 대구 출생, 첫 시집 1953년 『목숨』~제19시집 2020년『사람아, 사람아』, 첫 수필집 1964년 『잠시 그리고 영원히』~제11수필집 1999년『사랑 후에 남은 사랑』, 1990년 대한민국예술원 문학 분과 회원 입회, 1993년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1958년 제1회 자유문학상 수상~2020년 구상문학상 본상 수상(본지 p. 152~155/ 김남조 연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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