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김종삼(1921-1984, 63세)
헬리콥터가 지나자
밭 이랑이랑
들꽃들일랑
하늬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 갔으리라.
-전문-
▶ 죽음에 맞선 순수의 형태들 3 (발췌)/ 김종삼 : 죽음과 삶의 상호교섭운동_정과리/ 문학평론가
우리가 '죽음_곁에서 삶'이라고 표현한, 두 세계에 동시에 거주하는 것. 그것은 그가 죽음을 정직하게 받아들였을 때 그가 행한 그만의 선택이다. 게다가 이 선택을 유발한 '죽음_삶'의 상황이 긴박한 인과성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두 행의 "상쾌하다/ 이곳도 전쟁이 스치어"에서 행 사이의 긴장을 보라. 그런데 이 긴장을 문득 느끼면서 독자는 불현듯 제1행을 올려다본다. 이 상쾌함은 '헬리콥터'가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근원은 전쟁이었던 것인가? 평화롭다 못해 심드렁한 어조로 기술된 듯이 보이는 이 시행들이 실은 이런 경악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p. 시 123/ 론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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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7월(415)호 <기획연재 61/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 에서
* 정과리/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 『스밈과 짜임』(1988), 『글숨의 광합성』(2009),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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