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계단 외 1편
정종숙
새로 지은 집은 콘크리트 냄새가 났다
담벼락에 주춧돌 놓은 사람 이름이 박혀 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하늘을 안고 있다
구두 발자국 소리 나는 콘크리트 계단
너라는 집을 지어 본 사람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
오래 서성였던 시간을 기억하는 계단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마주한다
그때 무엇 때문에 멈칫했는지
계단은 끝내 말하지 않는다
발소리만으로 대화는 이어지고
끊어지기도 한다
멀리 오는 너를 보기 위해서
유리벽으로 지은 집
갚아야 할 무엇이 남아 있어서
힘내서 계단을 오르면
모르는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전문(p.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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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게 걸었다
숱한 표정이 묻어 있는
뒷모습을 숨기고 싶어서
소심하게 걸었다
육교만 남고
고무줄과 단추를 파는 노인의 얼굴을
지나칠 때마다
춥게 걸었다
뒷모습을 들키지 않은 채
수많은 육교를 건넜다
사유상 뒷모습에서
흘러내리는 숨을 들이마셨던 날
춥게 걸었던 날이 깨어나
바람 부는 언덕에 서서
먼 데를 바라보았다
뒷모습이 끌고 가는 길고 긴 곡선의 길에
당신이 풀 수 없는 망망한 것들의 목록
먼 데는 멀어지고 있었다
-전문(p. 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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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춥게 걸었다』에서/ 2024. 10. 25. <시와소금> 펴냄
* 정종숙/ 2020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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