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생명
정숙자
지구는 전체가 비탈이다. 가파른 하늘 아래 나무로, 엉겅퀴로 혹은 곡식으로 생명들이 뿌려진다. 천차만별 부화된 떡잎들은 풍우에 나부끼고 햇빛에 그을리며 물것들에게 시달림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뿌리내리고 꽃 피우며 가능한 한 열매도 맺어야 한다. 그 한바탕의 소용돌이를 우리는 생애라고 일컫는다. 궁극적인 고독에 위안이 되어줄 또 하나의 나는 어디에도 없다. 자아가 뿜어낸 가지와 잎새에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는 홀연히 본디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번다한 여정이 불과 백 년 안팎의 인과다. 그러나 간혹 오랜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는 자취를 남기는 이가 있으니 그는 곧 땀방울로 눈물을 식히며 분골쇄신 자신의 삶을 예술화한 이름들이다.
모동야인거(茅棟野人居)이니
문전거마소(門前車馬疎)로다
임유편취조(林幽偏聚鳥)하고
계활본장어(谿濶本藏魚)라네
산과휴아적(山果携兒摘)이며
고전공부서(皐田共婦鋤)거늘
가중하소유(家中何所有)리오
유유일상서(唯有一牀書)로다
갈대로 이은 야인의 집이거니
문전에 찾아오는 사람 없어라
숲은 그윽해 새들만 지저귀고
계곡 물 깊어 고기가 숨어드네
아이들은 어울려 산과를 따고
부부가 함께 층층밭을 매는데
집안에는 무엇이 더 있으리오
오로지 쌓여 있는 책뿐이로다
-모동야인거(茅棟野人居)-
이 시는 한산(寒山)의 오언율시다. 한산은 8세기 경 사람으로 전기는커녕 성명조차 알 길이 없다. 여구윤(閭丘胤)의 『한산자시집』서문에 의하면 오늘날 전해지는 시편들도 나무․바위․바람벽에 씌어진 것들을 모은 것이라 한다. 한산은 세상에 뜻을 두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은둔의 길을 택했다는 설이 있다.
그는 지리적 사상적으로 방황을 거듭한 끝에 ‘한산’이라는 곳에 정착하여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노래하였다. 세상을 풍자하고 풍속을 나무라는 시들도 있지만, 대개는 청정한 본성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려내었다. 비참한 모습은 걸인에 가깝고 얼굴은 여윌 대로 여위었으나 그의 일언일구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진리이며 이치에 합당한 것이었다고 한다.
국청사(國淸寺) 부엌에서 일하던 습득(拾得)이 대나무 통에 음식찌꺼기를 모아두었다가 한산이 오면 짊어지고 가게 했는데 때로는 스님에게 붙들려 욕설과 매질을 당한 뒤 쫓겨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한산은 가만히 멈추어 서서 소리 내어 웃다가 돌아가곤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우리가 논하는 한산이라는 이름도 그가 머물러 살았던 지명이라고 꼽는 이와 그의 이념적 정착지일 거라고 짚는 이로 나뉜다. 이름조차 잃어버린 그의 별자리에 서린 한과 무너진 골짜기를 뉘라서 헤아릴 수 있으랴.
‘갈대로 이은 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며칠 동안이나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이 시가 지닌 삶의 깊이와 폭이 너무나도 큰 빛으로 꽂혔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 안에서 독자는 문장과 인간을 동시에 읽는다. 독후감의 파장이 쉽사리 멈추지 않을 때 독자는 그 작품의 생명력을 흡수한다. 지은이의 심성․의도․문체․사상․삶 등을 헤아리며 자신의 벼루와 시야를 재정비한다. 그 문구로 내 글귀가 강화되고, 그 철학으로 내 오성이 명민해지며, 그의 앎을 통해 나의 내면이 맑고 따뜻해진다면 그 시는 과거라는 말을 떠나 늘 현재만을 살게 될 것이다.
시란 독자에게는 감상이지만 작가에겐 삶이다. 한 작가의 삶이 견고한 탑을 구축했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인가를 나누어 받는다. 그러므로 뒤에 오는 사람은 앞서 간 이들의 발자국 위에 또 한 번 발자국을 포개는 자이다. 굳이 뼈로 쓴 시와 피로 쓴 시, 혼으로 쓴 시를 나누어 보자면 한산의 ‘모동야인거’는 맨 마지막 항에 속하리라고 본다. 뼈의 마모를 거쳐, 피의 승화를 거쳐 무상무념의 영혼을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감정뿐 아니라 어떤 헤아림도 남아 있지 않은 이 시의 경지가 현대시의 복잡다단함을 안쓰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아오기까지 그의 고뇌는 어디에 기대어 한설을 견디었을까.
흔히 작품을 잉태한다-낳는다 하거니와 시는 사람의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유기체다. 작품 자체가 스스로 발아하고 성장하며 발을 넓히려는 욕구를 지닌다. 어느 어버이가 자식에게 탄탄대로를 열어주고 싶지 않으리요, 마는 험난한 세파는 모자의 뜻을 순순히 가납하지 않는다. 양지바른 곳에 모종을 해두어도 작품 자체가 부실하면 훗날을 기약할 수 없고, 수작이라 할지라도 햇빛이 모자라면 힘차게 일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진정 하늘이 낸 작품이라면 바위 끝에 떨어졌을지언정, 지은이의 넋이 진토에 묻혀 사라졌을지언정 결국 찬란한 날개를 만천하에 펴 보이게 될 것이다. 앙상하지만 품격이 고고한 나무를 일러 ‘문인목(文人木)’이라 한다. 이리 꺾이고 저리 휘며 ‘차가운 산(寒山)’을 지킨 한산의 삶에 겹쳐진 명사가 아닌가 싶다.
이 원고를 쓰기 전에 나는 여남은 매의 편지봉투를 만들었다. 지나간 달력이나 소임을 마친 포장지 등으로 편지봉투 또는 책봉투를 만드는 일이 나로서는 가장 손쉽게 생명을 살려낼 수 있는 길이다. 성장과 번식 구조를 갖춘 종만이 생명은 아닐 것이다. 조금만 다른 각도로 접근하면 형상을 가진 모든 물체가 생명임을 짐작하게 될 것이다.
시 한 편을 짓는 데에도 백 여 매의 퇴고용지가 필요한 나는 의복․음식․지붕 다음으로 종이에게 빚지는 사람이다. 정신의 공급원인 책도 종이요, 생각을 담아두는 그릇도 종이요, 측간의 절대적인 아삼륙도 종이다. 아직 이면이 남은 종이를 그대로 버린다는 것은 절반이나 남은 생명을 지워버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내가 편지봉투 만들기를 즐긴 것은 삼사십 년 전부터다. 학년말에 쓰다 남은 스케치북이나 색도화지, 버려질 노트표지 등으로 솜씨를 내어보는 정도였다. 그때 이미 무의식은 내가 종이킬러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 책상 한쪽에는 풀․자․칼․가위․규격봉투 사이즈의 빳빳한 봉투본과 작업용 하드지가 또 다른 문방우로 놓여 있다. 가끔 엽서도 만드는데 일회성으로 그치는 그림이 아깝게 느껴졌을 경우다. 됨됨이가 너무 소소하지 않은가 싶다가도 그게 내 본성이려니 여기고는 이내 여유로워진다. 오늘날에도 자이나교 승려들은 작은 생명들을 무심히 호흡하게 될까봐 얇은 천으로 입과 코를 에두르고 걷는다하니 거기 비하면 내 소행은 오히려 소란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살려내는 생명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그 종이한테서 얻는 기쁨은 몇 배로 불어난다. 헌 종이를 마르고, 접고, 풀칠하는 동안 나는 그늘 고운 나무 밑에라도 앉아 휴식을 취하는 것만 같다. 잡다한 생각을 떠나 오로지 봉투 하나만을 생각하게 되므로 정화가 무리 없이 고요로 이어진다. 종이의 전신이 나무인 만큼 녹색인자가 내 지문을 타고 온몸으로 전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이는 나무의 품위를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는다. 구기거나 찢거나 불태워지더라도 무저항이다. 자신을 위해 누구와도 맞서지 않는다. 나무가 어떤 불행 가운데서도 삶을 버리지 않듯이 종이 또한 온유를 버리지 않는다. 지금 내 손에 잡힌 종이도 구름과 바람, 별과 이슬, 새들의 사랑을 흠뻑 받은 나무였으리라. 그 사랑을 그대로 우리에게 베푸는 것일까. 종잇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은하수와 빗방울, 햇살과 바람결이 유정하고 무한하다. 그 동안 내가 태워 보낸 퇴고용지들도 제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 새들을 다시 안고 노래했을까.
오늘날 흔전만전 사용하는 종이는 그 옛날 한산이 글을 새겼던 나무이며 바위이며 바람벽일 것이다. 나는 시를 사랑하는 만큼 종이의 덕을 사모한다. 글과 종이는 공기와 생명의 관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인들 세계에는, ―글은 얻었으나 이름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이름은 얻었으나 글이 미치지 못하는 이가 있다. 글도 이름도 알리지 못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글과 이름을 동시에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이들 모두 고뇌하는 영혼들이다. 어떤 시인인들 노력을 기울이지 않겠는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과 같이 다만 최선을 경주하는 일생이라면 그의 삶은 그대로 빼어난 작품일 것이다. 맺혔던 이슬이 흔적 없이 날아가지만 풀잎은 그 수분을 흡입하여 싱싱한 줄기를 세워가듯이 숨결이 찬찬한 시인들은 유명과 무명을 떠나 인류사의 빛일 것이다.
문인으로서 고독이 깊으면 사유가 깊을 것이요, 아침과 저녁이 가지런할 것이며, 저절로 겸손할 것이므로, 다만 글에 묻혀 사는 것만으로도 지복임을 확인해야 하리라. 이름이야 언젠가는 벗어 놓고 가야 할 단벌옷이 아닐까. 작품이 우선되지 않은 허명은 한낱 떠도는 티끌에 불과할 터. 이름은 잃었으나 깨끗한 궤적과 글을 남긴 한산은 유혼이나마 세상을 돌아봄에 있어 참회가 적으리라.
나는 등단 후 십 년 동안이나 청탁을 받은 기억이 없다. 때때로 면벽의 세월이 괴로웠지만 돌이켜 볼수록 고마운 골짜기였다. 독서․사고․문장이 그때 갈피를 잡았던 것 같다. 또한 이 순간에 이르도록 어느 문예지에 반쪽짜리 서평 한 번 실려본 적 없지만 그 점도 오히려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내일부터는 발부리를 세상 쪽으로 돌리지 않으리라! 얼마나 숙고하고 번민했던가. 피가 엉기는 신발을 공안 삼으며 나는 자신과 세상을 읽고,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그 사이 머리털이 희었고 운명과도 담소자약할 수 있는 마음을 추스르기에 이르렀다.
시는 내 뼈가 부드러울 때부터 친근하였으니 끝날까지 내려놓지 못할 것이로되 세상에 대한 연연함과는 의미가 멀다. 자신의 어제와 오늘을 가중크리며 눈에 드는 작품이 지어졌을 때 스스로 읽어보는 기쁨을 영광으로 삼으리라. 시는 돈이 되지 않아 속되지 않고, 권력이 되지 않아 욕되지 않고, 명예가 되지 않아 죄 되지 않는다. 더욱이 한미한 선비는 청탁에 쫓기지 않으므로 등잔불이 어지럽지 않다. 그것이 즉 이름 없는 시인의 고매함이다. 천년을 넘어온 한산의 시는 다시 또 천년의 물굽이를 거스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잃어야 하는 명암이 이 세상의 급경사다. 진정 무엇이 시이며 시인의 생명인가를 곱씹어 봄직하다.
‘갈대로 이은 야인의 집’에 머물다보니 어느새 땅거미가 깃들었다. 요새는 간간이 한산의 곁에서도 울었을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굳이 시골이 아니어도 풀이 있는 곳이면 찾아드는 신의가 고맙고도 아름답다. 조그마한 벌레가 어찌 그리 또렷하게 자신을 알리는지 커다란 내 몸집이 어느 때보다 버개하다. 산골 귀뚜라미 소리는 더욱 투명하게 솟았을 텐데 한산의 달이 얼마나 붉게 흔들렸을까. 그의 속내는 단풍보다 먼저 물들고, 물보다 먼저 얼었으리라.
그 외로웠던 시인 앞에 내 편지봉투 하나를 선사하리라. 겉봉에는 “천태산 당흥현에 은거했던 묵선”이라고 쓰리라. 손글씨로 또박또박 안부를 실어 소지하리라. 천년 전의 한 생명이 천년 후의 한 생명에게 생명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었노라고 전하리라. 그리고 또 그의 시 한 편을 가만가만 낭송하리라.
부드러이 생긴 아름다운 소년이여
모든 경전 사적 두루 읽었다
사람들 모두 선생이라 부르고
세상은 다 학자라 일컫네
그러나 벼슬자리 얻지 못하고
또 쟁기와 보습도 잡을 줄 몰라
한겨울에도 베옷을 입었거니
아아, 이 책이 나를 그르쳤구나
雍客美少年 博覽濟經史 盡護曰先生 皆稱爲學士
未能得官職 不解秉耒耜 冬披披布杉 蓋是書誤己
-옹객미소년(雍客美少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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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2003-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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