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당신이라는 방/ 최혜숙

검지 정숙자 2010. 11. 7. 00:11

 

   당신이라는 방


     최혜숙



  이상도 하지 나는 왜 한밤중에 일어나 당신의 얼굴을 기웃거리는 걸까 당신의 얼굴은 닫힌 방처럼 캄캄한데 주인 없는 그림자들의 아우성이 밤새 머릿속을 두드린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당신의 방문을 열 수가 없다

  이상도 하지 나는 왜 꽃이 피는 새벽이면 목이 타는 걸까 자작나무 밑 당신의 발자국엔 소리가 없다 숲속으로 사라지는 가볍고 무거운 그림자, 마른 나무들의 젖은 아우성을 떠나보낸다

  이상도 하지 나는 왜 자꾸 어둠 속으로 뒷걸음치는 걸까 커튼 뒤에 웅크린 당신의 울림 없는 목소리 두꺼운 벽에 막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틈으로 새어나온 냉기가 온몸을 훑으며 지나간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천 년 동안이나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시집『그날이 그날 같은』에서/ 2010.10.30 <도서출판 시와 시학>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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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혜숙/ 전남 영암 출생, 2007년『시현실』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