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나와 마주하는 시간/ 최도선

검지 정숙자 2024. 7. 9. 00:58

<서문>

 

    나와 마주하는 시간

     - 시터 동인 제6집 『시터』

 

     최도선

 

 

     이 기록의 주제를 이루는 괴이한 사건은 194×년 오랑에서 일어났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19세기 초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을 모티브로 하여 쓰인 이 소설을 30년 전에 읽을 땐 그저 작가가 그려낸 소설로만 읽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다시 꺼내 읽어보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그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페스트 환자들을 수용할 곳이 없어 시립경기장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했다. 등등    전율을 느꼈다.

 

  우리 동인도 모임을 가져본 지 1년이 넘는다. 이런 난제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올해도 동인집을 묶는다. 벌써 제6집이다. 비대면 시대라 살갑게 만나지는 못했어도 서로의 애틋한 감정만은 잃지 않기에 마음만은 더 각별했다. 동인 각자 작품에 몰입하거나 자기와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좀 더 섬세해진 면도 있을 터, 바깥 활동을 못하는 대신 독서의 폭을 늘리는 시간을 갖게 되어 글 쓰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유익한 시간을 갖는 계기이기도 하다. (고통받으시는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겠으나)

 

  올해 이미산, 윤경재 시인이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얼굴을 맞대지는 못해도 '시터'라는 열차를 타고 바람평원을 지나 지평선을 따라 탄탄한 레일 위를 달린다. 명상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자발적인 근원을 해방시킬 몸의 제스처에 다가가려 한다. 메를로 퐁티의 침묵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 이어져 왔고 또 이어져 갈 것이다. 700년 전 발생한 페스트로 인해 나온 『데카메론』을 보더라도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의학,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선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사람이 드문 곳에 은신해 이 책을 쓴 보카치오가 눈에 선하다. 무서움에 떠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해학과 풍자로 쓴 서양판 천일야화,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오길 기대해 보며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p. 4-5) <최도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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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6집 『시 터』 2021. 10. 22.  <한국문연> 펴냄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서른아홉 나연 씨』『그 남자의 손』『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외비평집『숨김과 관능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