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이름 없는 것들 외 1편/ 박종국

검지 정숙자 2024. 7. 5. 02:54

 

    이름 없는 것들 외 1편

 

     박종국

 

 

  아무도 모르게 오고 간다

  한가하게 길바닥에 누워 있는 세월

  흔들기도 하고 발길로 차기도 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계절처럼 오고 가면서

  허약한 놈 있으면 잡아먹고

  나머지는 부려 먹는

  무밭의 벌판을 만들어 내는

 

  이름없는 것들은 

  제 삶을 물어뜯게 하는

  천하의 악종 같이 두려움을 안겨 주면서 

  우리들 안과 바깥에 꽉 차 있다

 

  어디든 빈틈없이 메우고 있는 야석같이

  젖꼭지를 물리고 있는 어머니 마음같이

  주먹짏고 치대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그늘 없는 삶의 길을 오고 간다

 

  어디쯤 가야 

  너를 울리고 나를 울리면서 오가 가는

  그림자 같은 이야기라도 들을 수는 있을까

  아, 하고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전문(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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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 앞에서     

 

 

  그리움이 볼품 같은 외로움

  산다는 것에 대한 목마름이 한없는

  쓸쓸한 빛이 꿈을 꾸고 있는

  깊이 모를 슬픔이 흔들리지 않는 호수같이

  감동 없는 눈빛

  겨울 하늘처럼 차갑고 삭막하지만

  모든 존재에 몸과 마음을 마친 듯 풀어 놓고는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찌들고 주름진 속에 영롱한 구슬을 안고

  세월에 속아 사는 엄마의 그늘 같아서

  나직나직 불러 보지만 끝내 나타나질 않는

  가늠할 수 없는 무한의 슬픈 눈을 바라보는

  눈앞에 숨은 듯 숨지 않은 듯

  세상 바깥에서 익혀가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말들이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호수 같아 빠지면 죽을 것 같아서

  목 매인 송아지처럼 오도 가도 못하고

  한눈을 파는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바람 한 점 햇살 한 점을 받아먹는 삶만이

  귀청이 덜덜 떨리는 현실이라는 생바람 견디느라

  끔벅끔벅한 눈 슬픈 눈

  우리들 눈 아래 그늘 속에 앉아

  유장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저 무한 앞에

  세계관 인생관 하고 소리 질러 보아야

  엄마를 부르는 송아지 울음 만이나 할까

      -전문(p. 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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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무한 앞에서』에서/ 2024. 4. 25. <시작> 펴냄

박종국/ 1997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집으로 가는 길』『하염없이 붉은 말』 『새하연 거짓말』『누가 흔들고 있을까』『숨비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