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카카오톡 외 1편
난중일기外史 · 2
박재화
한밤중 달려드는 까톡까톡 소리
단체 카카오톡을 나올 수도 없고
휴대전화를 진동 처리하면서
충무공의 수고를 생각는다
계사년* 전란 속 여름날
같은 내용의 편지를
접반사, 도원소, 순변사, 순찰사, 병사, 방어사 등
여섯 군데나 보내야 했던 충무공
의관을 정제하고
먹물 듬뿍 찍어 정성껏 보고서를 썼음
더러는 고쳐 쓰고 처음부터 다시 썼음
비 내리는 운주당運籌堂**의 충무공을
-전문(p. 48)
* 왜인들이 쳐들어 왔던 임진년의 다음해, 1593년
** 충무공의 서재 겸 집무 공간으로, 합동 작전계획의 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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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날? 제발!
난중일기外史 · 3
난리통에 돌아가신 어머니
장례도 못 치르고
전장 누볐는데
아들의 전사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그리 땀은 온몸을 적시고
통증은 불면의 새벽을 부르는지···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소리쳐 울 따름
빨리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한다는 절규*
빗물소리, 파도소리에 묻힌다
병약한 충무공이
병약한 나라를 건졌다
-전문(p. 49)
* 1597년(丁酉年 음력 4월 6일, 4월 19일, 5월 4일, 5월 5일, 5월 6일, 10월 14일 등 곳곳에 보이는 통곡들···
해설> 한 문장: 충무공은 어느 날 같은 내용의 편지를 여섯 군데나 보냈다(「카카오톡 난중일기外史 · 2」). 요즘이라면 단체문자로 날렸을 텐데 충무공은 의관을 정제하고 정성을 다해 보고서를 썼다. 우리는 카톡이 연신 울리면 무음 처리한다. 그러나 시인은 연신 울리는 카톡 소리를 그대로 들으면서 충무공을 생각한다.
기록에 따르면 충무공은 몸이 건강하지 못했다. 과거에도 단번에 합격하지 못했으니 공부머리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그리 잘나지 못한(?) 충무공이 나라를 지켰다.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소리쳐 울 따름/ 빨리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한다는 절규/ 빗물소리, 파도소리에 묻힌다// 병약한 충무공이// 병약한 나라를 건졌다"(「아프지 않은 날? 제발! 난중일기外史 · 3」). 왕이 백성을 위해서 무엇을 했을까? 선조는 신의주로 줄행랑을 쳤다. "병약한 충무공이 병약한 나라를 건졌다"는 것은 권력자를 향한 시인의 페이소스이다. 메아리는 없을지언정, 그 충무공이 시인이고 우리일 터. 우리는 박재화의 시에 등장하는 페이소스의 페르소나이고 동시에 그가 만든 유머의 페르소나이다. 그의 시들에서 주인공은 여지없이 우리들인 것이다. (p. 시 48 · 49/ 론 99-100) <한복용/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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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비밀번호를 잊다』에서/ 2021. 6. 15. <인간과문학사> 펴냄
* 박재화/ 1951년 충북 보은 출생, 1984년 『현대문학』 2회 추천완료로 등단, 시집『도시都市의 말』『우리 깊은 세상』『전갈의 노래』『먼지가 아름답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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