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유자효
폐가
담장 및
야생화가 피었다
그것도 그늘진 곳
새하얗게 내민 얼굴
이곳서 종신서원한
그 고독이 슬프다
-전문(p. 215)
◈ 이곳서 종신서원한/ 그 고독이 슬프다(발췌)_유자효/ 시인
경북 왜관에 있는 성베네딕도회수도원에 가서 수사들의 종신서원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종신서원이란 일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남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하느님께 서약하는 청년 수사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영혼으로 사는 사람들이기에 몸이 없는 사랑, 실체가 없는 사랑에 일생을 바치겠다고 약속하는 걸까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노랫말을 가진 노래를 즐겨 불렀다던 '큰 바보' 김수환 추기경이 생각나네요. 그분도 몸이 없는 사랑이 괴로웠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몸이 없는 사랑을 너무나 사랑한 걸까요.
마더 테레사 수녀, 김수환 추기경, 이태석 신부와 소록도에 와서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평생을 바치고는 처음 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하나만 들고 떠난 마리안, 마가렛 수녀. 우리는 이렇듯 사랑의 삶을 살았던 그들을 감동으로 기억하지만 아직은 너무 어리게 보이는 새파란 비구니들, 아직은 소녀티가 나는 새하얀 수건 속의 어린 수녀들이 삼삼오오 다니는 것을 보면 그늘 속에 있는 여린 야생화를 보듯이 왜 또 그렇게 마음 한구석이 짠한가요.
야생화는 어디서든 움직이지 못하는 운명이기에 기왕이면 친구들이 많은 밝은 풀밭에서 행복하게 태어나야 할 것을 "폐가" 그것도 "담장 밑" "그늘진 곳"에서 피어났군요. 그러나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종신서원의 고독을 견디는 그 모습이 시인에게 연민의 마음을 심었으니 그것이 그 아이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p. 시 215/ 론 215-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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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연 시평집 『시조의 향연』에서/ 2024. 4. 17. <책만드는집> 펴냄
* 김일연/ 경북 대구 출생, 1980년 『시조문학』에 천료, 시조집『빈들의 집』『서역 가는 길』『저 혼자 꽃 필 때에』『달집 태우기』『명창』『엎드려 별을 보다』『꽃벼랑』『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너와 보낸 봄날』『세상의 모든 딸들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 『깨끗한 절정』『먼 사랑』, 동화집『하늘발자국』/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회 운영위원, 국제시조협회 이사, <시조튜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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