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유종인
길 잃은 아이 하나가 저만치 울고 있기에
그늘 속에 섰던 눈사람
햇빛 속에 걸어 나가선
괜찮다,
울지 말거라
녹는 몸으로
달랜다
-전문(51-52)
◈ 괜찮다, 울지 말거라/ 녹는 몸으로 달랜다(발췌)_김일연/ 시인
비극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그늘 속에 섰던 눈사람"이 계셨기에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햇빛은 그 사람이 속한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도 자신의 주인이 아니었고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그런 처지를 슬퍼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제가 당신의 예술이며 인생이며 삶이었습니다. 언제나 그늘 속에 서 있던 사람. "햇빛 속에 걸어 나가선/ 괜찮다,/ 울지 말거라" 달래줄 때 정작 그의 몸은 그때마다 조금씩 녹아갔던 것이겠지요. 그 눈사람으로 인해 길을 찾을 수 있었던 내가 "길 잃은 아이"의 눈사람이 되어주는 것, 유종인 시인의 시조를 읽으며 그것이 더욱 간절한 희망으로 다가옵니다.
눈사람이 녹아가듯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죽음을 안고 있는 삶, 나날이 죽어가고 있음이 욕되지 않게 '사랑'으로 오늘을 살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삶 속에 있는 죽음을 사랑하며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를 꿈꾸'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이기도 하고요. (p. 시 51-52/ 론 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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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연 시평집 『시조의 향연』에서/ 2024. 4. 17. <책만드는집> 펴냄
* 김일연/ 경북 대구 출생, 1980년 『시조문학』에 천료, 시조집『빈들의 집』『서역 가는 길』『저 혼자 꽃 필 때에』『달집 태우기』『명창』『엎드려 별을 보다』『꽃벼랑』『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너와 보낸 봄날』『세상의 모든 딸들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 『깨끗한 절정』『먼 사랑』, 동화집『하늘발자국』/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회 운영위원, 국제시조협회 이사, <시조튜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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