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장석남
이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자가 너무 많다
이 문으로 들어설 수 없는 자가 너무 많다
이 문으로 들어오고 싶지 않은 자가 너무 많다
한때 나의 집 대문은
다알리아 같은 것이었고
줄 끊겨 날아간 방패연 같은 것이었고
시들시들한 고추모 같은 것이었고
찔레덩굴 같은 것이었고
등잔불 같은 것이었다
꽃 같은 것이었고
바위 같은 것이었다
원元코 형亨코 이利코 정貞코······
고전을 따라서 네 귀마다 하늘을 매달아도
이 대문을 나서는 데가 결코 사랑 같지 않다
사랑이 결락된 이 대문을 어떻게 호랑이는 찾아왔던 것일까
다시 호랑이가 대문간 지붕에 배를 깔고 앉아 있어도 나는 놀라지 않을 작정이다
한바탕 소나기같이 지나간 호랑이여
나의 집 대문간 지붕에 앉았다 간 호랑이여
다시 와 나를 물어뜯어다오
굶주린 나를 뜯어먹어다오
다알리아 같은 대문을 밀고 나를 찾아와다오
아니아니 훌쩍 대문간 지붕을 넘어 나를 찾아와다오
-전문-
◈ 사랑의 여정과 자연의식의 변주(부분)_ 박현솔/ 시인
평소 수월 스님은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자비심을 많이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숲에서 동물들을 만나면 스님이 자신들에게 적의敵意가 없음을 금세 알아차렸다고 하다. 그래서 스님 주변에 동물들이 자주 모여들었고 사람들도 그의 불도를 실천하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 시에서 화자는 어느 새벽에 술을 많이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생각지도 못한 호랑이가 "대문간 지붕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가 "슬금슬금 내려와" "뒷산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 그것이 현실인지 취기에 호랑이가 보인 것인지는 여기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의 집으로 찾아온 맹수가 수월스님과 어울렸던 그 호랑이라는 생각이 들자 화자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수월스님의 벗인 그 호랑이가 맞다면 화자에게도 자비, 즉 사랑이 남아있다는 증거인데 자신을 뒤돌아볼 때 "사랑이 결락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울음을 쏟게 된 것이다.
화자에게 대문은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고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과거에는 "다알리아" "방패연" "고추모" "찔레덩굴" "등잔불" 꽃" "바위" 같은 것들을 세워놓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자신을 지키고 방어해줄 두텁고 튼튼한 것들로 경계를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그만 경계를 무너뜨릴 상징으로서 "호랑이"의 출현은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이 된다. (p. 시 113-114/ 론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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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솔 詩論集『초월적 세계인식의 전망과 이데아』에서/ 2023. 10. 5. <문학과사람> 펴냄
* 장석남/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새떼들에게로의 망명』『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등
* 박현솔(본명, 박미경)/ 1970년 제주 성산 출생,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 2001년 『현대시』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시집 『달의 영토』『해바라기 신화』『번개와 벼락의 춤을 보았다』, 시론집 『한국현대시의 극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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