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박동억 평론집 『침묵과 쟁론』/ 사람을 만나러 간다 : 김언

검지 정숙자 2024. 4. 7. 15:12

 

    사람을 만나러 간다

 

     김언

 

 

  사람을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는 게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 후로도 나의 만남은 지속적이고 끈질기다.

  나는 조바심이 많은 문학이다.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가겠는가.

  우리는 사적으로 충분히 지쳤다. 둘 사이에

  어떤 시도 오고 가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괴로워하고 힜다. 그 얼굴이 모여서

  시를 얘기하고 충분히 억울해하고 짜증을 부리고

  돌아왔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이 더 만날 것도 없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 시를 얘기하려고

  오늘은 내 주머니 사정을 들먹이고

  내일은 내 자존심의 밑바닥을 꽝꽝 두드리고

  망치나 해머 뭐 이런 것들로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상황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들먹이는

  너를 만나러 간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너 또한 내일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 꺼지지 않는 불씨를

  확인하려고 네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만나는 사람.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

  우리의 만남이 전혀 시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도 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억울할 정도로

  길고 오래간다. 꺼지지 않는 이 불씨가 불화의 공동체

  시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

     -전문-

 

제2부 불화의 공동체_대화의 발명/ 3. 꺼지지 않는 기다림(발췌)_박동억/ 문학평론  

  이 작품에는 시로 쓰여야만 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시적이지 않은 순간'에 기대어 발견될 수 있다는 하나의 역설이 제시된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의 만남"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시를 초과하는 비시적인 영역에 놓인다는 메타적 인식이 전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과 대면하는 사건과 언어를 통한 소통이 상이하다고 전제한다면, 시를 통해 대면을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타인과 소통하기에 시는 충분하지 않은 매체가 아닐까. 그런데도 시의 한계조차 시로 정언하는 것이 시인의 역설이다. 바로 이 역설을 드러내기 위해 시인은 줄곧 "사람을 만나러 간다"라는 말을 강조하여 쓴다. "지속적이고 끈질기"며 "징그러울 정도로" 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표현처럼, 이 시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라는 문장을 반복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강조에서 우리는 "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기보다 타인과의 만남 자체가 소중하게 다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시가 무력하다는 사실은 도리어 '우리'가 대화를 지속해야 하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시적으로 충분히 지쳤"다고 말할 때이든 더욱더 "시를 얘기하려고" 할 때이든 결국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설령 시를 잃을지라도 대화를 끈질기에 지속하는 한 "꺼지지 않는 불씨"가 있다면 , 그것은 서로 대면하고 있는 순간이다.

  이러한 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역설적으로 읽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을 만나러 간다"라는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처럼, 끈질기게 타인과 만나고자 하려는 노력이 곧 시다. 시가 사라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대화가 곧 시다. "거기서 시가 오는가? 거기서 시를 배우는가?"라고 묻고 시인이 "나는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간다"라고 스스로 답할 때,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요컨대 말의 내용보다 앞서는 것은 말하기 위해 나아가는 대화의 자세다. 어떤 해답이나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말 건넴이라는 사건 자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시 쓰기나 대화는 뚜렷이 위계화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말 건넴이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도 평가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어떤 사건의 발생을 기다리듯 대화를 지속할 뿐이다. 이러한 대화의 형식이 비로소 세계를 추궁하는 방식으로 옮아갈 때 우리는 김언 시인이 제안하는 대면의 윤리적 차원을 깨닫게 된다. (p. 시 145-146/ 론 146-147)  

   ---------------------

  * 박동억 평론집 『침묵과 쟁론』에서/ 2024. 2. 8. <푸른사상사> 펴냄  

  * 박동억/ 201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 주요 평론「황야는 어떻게 증언하는가 : 2000년대 현대시의 동물 표상」「정확한 리얼리즘 : 작가 이산하의 문학에서 답을 청하다」 등, 저서『끝없이 투명해지는 언어』, 공저『오규원 시의 아이러니 수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