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달의 얼룩/ 김윤한

검지 정숙자 2024. 5. 26. 02:14

 

    달의 얼룩

 

     김윤한

 

 

  밤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실수였다

  애써 외면하고 지냈던 오래전의 달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거였다

  아득한 시간 거스르며 다시 나를 비추는 달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아픔에

  짐승이 되어 꺼이꺼이 울음을 쏟으며 손수건을 적시던 그 힘든 순간들을

  달은 냉정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달이 있다

  오늘 올려다본 달 속에는 지워버리고 싶도록 아픈

  그러나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나만의 순간들이 얼룩이 되어 남아 있었다

 

  나는 살아서 그 달을 다시 보는데

  그리운 것들만 아득히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

  달의 얼룩을 도저히 담당할 수 없다

 

  잊어버리자 외면하며 돌아오지만 잔인하게도 끝끝내 나를 따라오는 달

  오늘 밤 쉽사리 잠 못 드는 달 하나가 어느새

  검은 호수에 깊이 가라앉아 있다

       -전문(p. 66)

  ------------

 * 『시에』 2024-여름(74)호 <시에 시> 에서

 * 김윤한/ 경북 안동 출생, 1995년『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세느 강 시대』『무용총 벽화를 보며『무지개 세탁소』『지워지지 않는 잡』, 산문집『6070 이야기』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