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김시대
김건영
여름밤의 하늘은 구운 김이다
밤에는 구멍 뚫린 곳이 모두 빛난다
저것은 모두 별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박쥐가 되어버린 천체天體를 아시나요
동전은 모두 하늘로 떨어진다
종이처럼 얇게 골목에 펴 발라진 이것은
김이거나 검은돈
세상에 김 씨가 너무 많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얇게 펴진 마른 종이는 먹거나 먹히는 데에 쓴다
빨려 들어가듯 편의점에 다다르면
벌레들이 가득하다
해태海苔와 눈먼 해태가 있다
구운 김을 검은 간장에 찍어 드셔보세요
이것은 훌륭한 안주安住입니다
원怨 플러스 원怨
무병과 장수가 가득한 편의점으로 오세요
밤 과음過飮 악惡 사이 흥얼거리며
나의 편의를 위해 돈을 씁시다
동전 밑이 어둡다
지불 능력이 있다면
밤에 김을 싸서 드셔보세요
빛나는 쌀알들을 감싼 어둠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정치定置라고 부르는 시대가 있다
이상한 나락의 엘리트
법인은 항상 현장에 돌아온다
골목에 밤이 밥과 함께 돌아오는 것처럼
이인삼각, 둘이서 삼각김밥 하나를 나누어 먹어야 하는 밤도 있다
청춘을 곯려다오
나는 이제 청춘이 아니니 괜찮음
강 건너 법구경法句經
비약이든 삐약이든 붜든 일단 해라
코딩으로 헤딩을 배우는 아이들도 있고
이진법을 배우던 아이들이 일진한테 맞는 걸 몰라도 좋지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는 동안
어른들이 동요하는 동안
이제 먹이여 잘 있거라
수면은 전투다 각개전투
나의 엎드림은 Up Dream이라고 주억거리며
너희는 마음을 몸처럼 쓰는구나
누구나 주머니 속에는 괴물이 좀 있지 않니
때려서 디지면 몬스터다
반드시 살아남도록 합시다
다운, 다 운입니다
-전문-
▶ 웃기는 짬뽕과 스파게티 웨스턴(부분)_김건영/ 시인
누군가는 '삼김시대'라는 제목을 보며 정치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삼각김밥부터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것들을 동시에 떠올리면서도, 어느 한쪽 세대는 읽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패러디를 많이 차용했다.
이것이 성공적일지 아무도 웃지 않는 실패한 개그맨의 서글픈 농담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름답지도 않고, 심지어 시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읽을 가치도 못 느끼겠다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선택을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없다. 웃음과 울음을 섞고 싶고, 소위 모더니즘이라 불리는 가상과 리얼리즘이라는 허상을 섞고 싶다. 내 시는 그래서 다양한 것들을 섞으려다 실패한 나머지 이도저도 아닌 시가 되어야 한다. 나는 웃기는 짬뽕이 되고 싶다. 이것저것 잘 다듬어 함께 볶아낸 후 국물울 내 대접하고 싶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서부극은 스페인에서 촬영되었으며 그것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기존의 명징한 선악 구도를 벗어나 이분법적 세계를 벗어나 무법의 뒤섞임이 있는 그런 장르가 나는 좋다. 시에서 선언을 하면 안 되는가. 세상이 나를 꼬집는데 물어뜯기는 해봐야지. 그게 설령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지라도 나는 계속할 것이다. 미적 가치가 없더라도, 미적거리지 않고, 독자讀者가 없어진다면 소수의 독자獨子를 기다리면서. 언어의 폐지廢紙들 사이를 떠돌며 고정된 사유의 질서를 폐지廢止하기를 주장할 것이다. (p. 시 253-254/ 론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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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3-10월(406)호 <시간성_나의 시를 말한다_10> 에서
* 김건영/ 시인, 201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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