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기러기 필법筆法 외 1편
윤금초/ 시조시인
발묵 스릇 번져나는 해질 무렵 평사낙안
시계 밖을 가로지른 큰기러기 어린진이
빈 강에 제 몸피만큼 갈필 긋고 날아간다.
허공은 아무래도 쥐수염 붓 관념 산수다.
색 바랜 햇무리는 선염법을 기다리고
어머나! 뉘 오목가슴 마냥 젖네, 농담으로.
곡필 아닌 직필로나 허허벌판 헤매 돌다
홀연 머문 자리에도 깃털 뽑아 먹물 적시고*
서늘한 붓끝 세운다, 죽지 펼친 저 골법骨法.
-전문(p. 36)
* 큰기러기는 공중을 날 때 人자 모양 어린진을 친다. 대오 가운데 맨 우두머리가 항상 앞장서서 리더 역할을 한다. 큰기러기는 잠시 머물다 간 자리에도 깃털을 뽑아 떨어뜨려두는 습성이 있다. 이른바 '유묵遺墨'처럼 제 다녀간 흔적을 남겨 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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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인문학人文學
모래톱 베고 재주 넘는 파도의 하얀 포말. '엎지락' 하면 잇따라 '뒤치락' 몸을 틀고, 때때로 수미상관首尾相關의 손바닥소설 쓰고 있나?
-전문(p.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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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4-3월(661)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 대표작> 中
* 윤금초/ 1941년 해남 화산 갑길리 출생, 1966년 공보부 신인예술상 &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땅끝』『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큰기러기 필법』, 사설시조집『뜬금없는 소리』, 장편 서사 시조집『만적, 일어서다』, 4인 시조선집『네 사람의 얼굴』『네 사람의 노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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