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액체 시대*/ 강서일

검지 정숙자 2024. 4. 30. 01:38

 

    액체 시대*

 

     강서일

 

 

  잉여의 손

  잉여의 불빛

 

  잡을 인형이 많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볼 것이 너무 많아 한 편도

  보지 못하고 밤을 넘긴다

 

  수많은 선택지와

  수없이 구멍 난 파지가 쌓여 가는

  나날들이라니

 

  놀라지 마시라

  지금은 천년 빙하가 녹아내리고

  명사는 동사가 되어 흘러내리는,

 

  벽에 걸린 거울은 산산조각

  파편이 되는 시간,

 

  늙는다는 것은 과연

  살아남는다는 것인가

 

  신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희망을 멈출 때뿐**

  

  그러니 놀라지 마시라

  미라는 미라일 뿐,

 

  시간의 밀원지 따라 돌다리도 흘러가고

 

  무너질 것은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이니

 

  지붕을 덮치는 액체 시대여

     -전문(p. 52-53)

 

   *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액체 시대'라 진단했다

   **(Zygmunt Bauman)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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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4-3월(661)호 <이달의 시> 에서

  * 강서일/ 1991년 『자유문학』으로 시 부문 & 『문학과의식』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쓸쓸한 칼국수』 『카뮈의 헌사』등, 번역서 『비틀즈 시집』 『대화의 신』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