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은지_ 미음과 리을 사이를 헤매며(발췌)/ 무성 : 구현우

검지 정숙자 2024. 4. 29. 02:15

 

    무성

 

    구현우

 

 

  신은 좋은 마음과 좋은 몸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나는,

  좋은 마음이 깃든 좋은 몸을 원했습니다.

  

  신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다만,

  좋지 않은 마음을 담은 좋은 몸은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네 번의 전생이 그러했습니다.

 

  신은 그러나 나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은 얼굴입니다.

  신에게도 표정이 있고

  마음이 있다면요.

 

  타인이 빌었던 소원은 무엇입니까?

 

  나와 가까운 타인 말입니다.

 

  신은 그가 좋은 몸을 바랐고 일평생 병에 걸리지 않았으나

  수시로

  자해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몸의 문제입니까, 마음의 문제입니까?

 

  신은 몸도 마음도 아닌 그의 문제라고 합니다.

 

  신은,

  나쁘지 않은 마음은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바로 직전의 생이 그러했습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아서 이후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병실에는 나와 다시 가까워진 그가 있습니다.

 

  신을 만나고 온 나를 간호하는

  그가

  좋은 마음으로 뱉은 좋은 말이

  아무래도 좋게 들리지가 않습니다.

      -전문-

 

  ▶ 미음과 리을 사이를 헤매며(발췌)_이은지/ 문학평론가

  「무성」의 화자는 흡사 모래시계에 갇힌 듯한 무력함에 사로잡혀 있다. 죽음 직전, 혹은 탄생 직전의 장면에서 신 앞에 선 화자는 선택을 지시받는다. "좋은 마음과 좋은 몸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신을 향해 화자는 "좋은 마음이 깃든 좋은 몸"을 달라고 하지만 신은 이를 거절한다. 대신 "좋지 않은 마음을 담은 좋은 몸"이나 "나쁘지 않은 마음"을 담은 좋은 몸을 줄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왜인지 화자는 신이 제시한 선택지를 모두 거절한다. 그에 따르면 그것들은 "네 번의 전생"과 "직전의 생"에서 이미 살아낸 조건이므로, 그는 좋은 마음과 좋은 몸을 모두 갖추지 않았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파국의 변수들을 제법 살아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신이 결코 둘 다 내어주지 않는 까닭은 둘 중 하나를 취한 채로 나머지 하나를 추구하는 것만이 인생의 행로가 되어주기 때문일까? 그 길들이 서로를 속박하거나 밀어내어 결국 삶 전체를 거대한 미로와 같이 만들어버릴지라도?

  "나쁜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신을 향해 화자는 "나와 가까운 타인"은 무엇을 빌었는지 묻는다. 신에 따르면 그는 "좋은 몸을 바랐고 일평생 병이 걸리지 않았으나/ 수시로/ 자해했다" 그리고 이를 "몸도 마음도 아닌 그의 문제"라고 요약한다. 신이 보기에 좋은 몸과 나쁜 마음, 나쁜 몸과 좋은 마음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성숙시키고 완수하기 위해 추구해야 하는 과제와 같은 것이다. 신은 이 미로와 같은 과제를 냉정하게 부감할 뿐이고 인간은 그 속을 헤매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신 앞에서 인간은 그저 '어떤' 미노타우로스가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심판의 순간에 신과 인간 사이에 놓인 이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부터 무력하게 압도당하는 경험은 어쩌면 좋은 마음을 얻은 뒤에도 영영 지워지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p. 시 158-159/ 론 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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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10월(406)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신작시/ 작품론> 에서 

  * 구현우/ 2014년 『문학동네』로 등단, 시집『나의 9월은 너의 3월』『모든 에필로그가 나를 본다』

  * 이은지/ 2014년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