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해무/ 김제욱

검지 정숙자 2024. 4. 26. 02:45

 

    해무

 

    김제욱

 

 

  그림자로 가득한 컴컴한 새벽.

  서해대교에 들어서자, 죽은 자의 입김이 물씬 풍긴다.

 

  가려진 창문 뒤 유리알처럼 서 있는 사람들.

  흰 입술이 표지판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밤 꿈까지 속도를 매달고 따라와

  짙은 안갯속을 헤집는다.

 

  가려진 중앙선을 바라보며

  상행선과 하행선의 의미를 되묻는다.

  생으로 나부끼며,

  안개에 가려진 난간의 몰락을 가늠한다.

 

  이곳의 전망이란

  동굴 속에서 빛을 찾는

  믿음과 용기.

  시선으로 쌓은 다짐.

 

  식어가는 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눈앞에 펼쳐진 아득한 동공

  속도가 공포를 끈질기게 물고 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어둠이 펼친 입김의 흔적을 뒤쫓는다.

 

  새벽빛이 내려오길 바라지만,

  안개 낀 어둠은 여전히 강력하게 버티고 서 있다.

  거센 해풍이 차를 흔들고, 운전대를 콱 부여잡는다.

 

  그가 있을까?

  물어보면

  안개의 근원지를 알 수 있을까?

 

  차디찬 기운이 창문 틈새로 스며든다.

  얕은 숨결을 폐부 깊이 적시고 있다.

 

  먼 곳으로 떠나보내려는,

  목소리가 없는 사람에게 전하는 편지가 있다.

 

  함께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람 찢긴 금속성의 소리가 가득하다.

  길을 뒤덮는 안개에 속도계의 바늘조차 불안히 떤다.

  혈관을 따라 생존의 감각이 흐른다.

  안개가 펼친 아동의 무늬다.

 

  삶의 경계에 놓인 속도 제한 표지판이 흐릿하다.

  이곳에 들어서면

  홀로 자신의 얼굴이 놓인 바람 언덕에 서야 한다.

 

  두 손을 콱 쥔 것으로는

  그림자의 향방을 추적할 수 없다. 

  언어를 피워낼 수 없다.

 

  바다 건너온 먼 곳의 바람이

  새벽빛처럼 다가올 얼굴을 그리고 있다.

 

  안개 너머에서 비상방송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전문(p. 67-69)

   

 시작노트> 전문: 새벽 출퇴근을 위해 서해대교를 매주 두 번 건넌다. 계절 변화에 따라 때때로 눈비가 이곳을 무섭게 점령한다. 특히 짙은 해무가 끼는 날은 무엇이라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세상 끝 풍경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다. 감각의 진화보다 세상의 변화가 빠르지만, 이에 대한 대처는 늦고, 그로 인해 미래의 인간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매 순간 시적인 아름다운 순간과 인간다움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한없이 일상에 지친 나를 다시금 일으키고 있다. 안개의 폭력이 멈추지 않는다. 날이 선 궁리의 끝에 서 있다. (p.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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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3-10월(406)호 <신작특집> 에서

  * 김제욱/ 2009년 『현대시』로 등단